주식형-채권형 펀드 '시소 공식' 깨졌다

입력 2017-01-17 18:49
번갈아가며 자금 몰렸는데…올들어 2조5000억 동시에 자금 이탈

주식형 펀드 올들어 1.5조 유출…코스피 2050 넘자 차익매물 몰려
지난해 미국 금리인상 발표 이후 채권형 펀드도 환매 쏟아져


[ 송형석 기자 ]
“지금 팔아주세요.” 요즘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를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환매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채권형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는 우려로, 주식형은 코스피지수가 오를 만큼 올랐다는 이유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191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외국인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사라진 시소게임

17일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공모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조5249억원이다. 코스피지수가 2050선을 넘으면서 차익실현 매물이 집중적으로 몰린 결과다. 국내 채권형 펀드에서도 같은 기간 7696억원이 순유출됐다. 국내 주식과 채권에 함께 투자하는 혼합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1622억원)까지 합하면 순유출 규모가 2조4567억원에 이른다. 이 자금은 단기자금 보관소로 불리는 머니마켓펀드(MMF) 등 현금성 자산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초 이후 MMF로 순유입된 자금은 16조7501억원에 달한다.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는 기대수익률과 변동성 측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성격의 상품으로 동시에 자금이 빠져나가는 일이 드물다.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직전 한 달간을 기준으로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에서 동시에 5000억원 이상 빠져나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시소가 오르내리는 것처럼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에 번갈아가면서 자금이 몰린다는 ‘시소 공식’이란 용어가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이 공식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미국이 금리 인상을 발표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다. 금리 인상 여파로 채권가격이 급락하면서 채권형 펀드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서면서 ‘박스권 플레이(1900선에서 사고 2000선에서 파는 행위)’를 즐기는 투자자들이 차익실현 매물을 대거 쏟아냈다.

◆한국 펀드만 고전

주식형 펀드가 고전하고 있는 곳은 한국 등 일부 국가뿐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채권에서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펀드평가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1월 둘째주에 글로벌 주식형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80억4700만달러다. 특히 선진국 주식형 펀드는 같은 기간 75억7100만달러가 순유입돼 최근 1년 주간 순유입 기록을 다시 썼다.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주식 연계 상품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선진국 주식에 투자하는 ETF에 같은 기간 순유입된 자금은 101억7100만달러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공모형 펀드 시장이 당분간 침체를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 펀드에 대해선 기대 자체가 없다. 미국이 향후 3년간 매년 세 차례 금리를 올린다고 예고한 만큼 자금을 끌어모으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주식형 펀드 시장과 관련해서는 투자자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펀드매니저를 둔 국내 주식형 펀드 대부분은 ‘마이너스’ 수익률에 머물렀다. 코스피지수를 이긴 상품의 비중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온창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부장은 “투자자의 불신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다”며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을 뚫을 만큼 급등하거나 1900선으로 조정을 받지 않는 한 시장 분위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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