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12) 산시(山西)] '중원의 담장' 역할한 전쟁의 땅

입력 2017-01-16 17:54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중국 북부지역의 지도를 보면 서북에서 동남으로 400여㎞를 지나는 거대한 산줄기가 눈에 띈다. 앞의 산둥(山東) 편에서도 소개한 태항산(太行山)이다. 서북으로부터 번져 내리는 광대한 황토(黃土) 고원 지대의 동쪽 경계선이다. 누르스름한 황토의 고원지대와 동쪽의 푸른 화베이(華北) 평원이 이 산을 경계로 갈라진다. 산시(山西)라는 명칭은 이곳이 태항산 서쪽에 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는 나중의 명칭이다.

유목과 농업문명의 경계

아주 옛날 중국의 강토 개념으로 따지면 이곳은 중원(中原)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면모가 많다. 춘추시대(BC770~BC476년)의 호칭으로 따지면 이곳은 晋(진)의 땅이다. 지금도 산시의 별칭으로 자동차 번호판 등에 적는 글자다.

춘추시대 晋(진)나라가 들어섰던 곳이어서 그렇다. 이 나라는 당시 퍽 유명했다. 중원을 지키는 ‘담장’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흉노(匈奴) 등 유목민족의 침략 일선을 담당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이곳은 북쪽의 유목과 남쪽 농업 문명의 경계선이었다. 따라서 고래로부터 산시는 전쟁의 땅이었다. 경계선을 넘어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북방 유목과의 싸움이 늘 불붙었다. 지형적인 특성도 한몫했다. 황허(黃河)가 북쪽으로 한껏 꺾여 올라간 지점을 두고 있어서다. 선선한 날씨의 가을이 닥치면 가장 빨리 얼어붙는 곳이다.

그렇게 강이 얼어붙으면 말을 타고 넘어오는 사람들이 바로 북방 유목이었다. 산시는 게다가 전체 지형의 80%가 산악이며, 동서 양측이 높고, 중간에 하곡(河谷)형 분지가 발달했다. 아울러 북은 높고 남쪽은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 형태다. 따라서 북쪽을 침범한 유목민족이 전선을 돌파해 하곡 지형의 분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치면 공격이 아주 수월하게 펼쳐졌다. 게다가 더 남쪽으로는 중국 중원의 핵심이던 낙양(洛陽) 등이 있다. 산시는 그래서 중원의 한복판을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인후(咽喉), 전략의 요충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중국 고대 문명의 바탕이랄 수 있는 내륙 소금이 풍부했고, 철광을 비롯한 광물자원이 많았다. 국가 경영의 필수 요소라고 해도 좋은 이른바 ‘염철(鹽鐵)’의 고장이다. 그러니 자원 쟁탈을 향한 사람들의 발길이 일찍부터 분주했으리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산시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우선 ‘호마(胡馬)와 북풍(北風)’을 떠올린다. 북으로부터 쳐내려오는 강력한 유목민족, 그리고 한(漢)나라 이후 이곳을 점령해 정주(定住)하며 서역(西域)의 문명 요소를 도입한 북방인, 이들을 막고자 했던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 등이 서린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이 땅에는 일찌감치 실용적인 사고가 발달했다. 효율적으로 사회를 경영해 전쟁을 비롯한 각종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의 법가(法家) 사유체계는 바로 이 산시에서 영글었다.

법가 사상의 뿌리

춘추시대 지금 이곳에 뿌리를 뒀던 晋(진)은 그 뒤 전국시대에 이르면서 趙(조), 韓(한), 魏(위)의 세 나라로 갈린다. 그러나 그 근원이 晋(진)에 있다고 해서 이들을 三晋(삼진)으로 불렀다. 나중에 생긴 이 三晋(삼진)이 바로 지금 중국 법가의 근원이라고 해도 좋다.

우선 법가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사람은 이괴(李)와 신도(愼到), 상앙(商), 신불해(申不害), 한비자(韓非子) 등이다. 이 가운데 이괴는 진나라에서 갈라져 나간 위나라, 신도는 역시 진나라의 후예인 조나라, 신불해 또한 마찬가지의 한나라 출신이다. 여기에 법가의 사유 체계를 완성한 한비자가 한나라 출신이다.

법가의 전통은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실용성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추상과 관념보다는 구체와 실용으로 세상을 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이해관계에 밝다.

명(明)대와 청(淸)대에 이 지역의 풍부한 소금을 근간으로 발흥해 당시 중국 최고의 재부(財富)를 쌓았던 晋商(진상) 그룹, 《삼국지(三國志)》 최고의 무장(武將)으로 이제는 재물의 신으로 ‘승격’해 중국인들의 숭앙을 받는 관우(關羽)가 산시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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