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음성인식 AI '알렉사'
가전·자동차·스마트폰에 탑재
'가족 도우미' 로봇 대거 소개
중국, CES 중심국으로 부상
스타트업 비중도 날로 커져
[ 남윤선 기자 ]
세계 최대 전자쇼인 ‘CES 2017’이 지난 7일 폐막했다. 이번 CES는 단순한 전자쇼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기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자뿐 아니라 패션, 여행 등 다양한 업종의 혁신 기업이 총 출동해 합종연횡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CES는 AI, 로봇, 중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등 4개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알렉사가 지배한 CES
“올해 CES는 아마존이 주도하고 있다.”(미국 IT전문매체 시넷)
CES 2017에는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이 참가하지 않았다. 전시관도 없고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장 곳곳에서 아마존이 2014년 내놓은 음성인식 AI 비서 ‘알렉사’를 적용한 각종 제품을 만날 수 있었다.
가전업계에서는 LG전자가 냉장고, 월풀이 오븐에 알렉사를 활용한다고 발표했다. LG전자의 AI 냉장고는 사용자가 요리를 하면서 음성 명령을 이용해 음악 재생, 뉴스 검색, 온라인 쇼핑, 일정 확인 등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자동차 기업 중에선 포드와 폭스바겐이 알렉사 시스템을 차량용 음성비서에 사용하기로 했다.
중국 화웨이가 스마트폰 ‘메이트9’에 알렉사를 적용하기로 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화웨이 스마트폰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쓴다. 구글은 구글홈이라는 AI 비서 서비스로 아마존과 경쟁하는 관계다. 리처드 유 화웨이 소비자부문 대표는 CES 기조연설에서 “AI가 사용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학습해 어떤 기능을 쓸지 예측하고 수행하면서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사 외에도 구글홈, IBM 왓슨 등 다양한 AI 기술이 수많은 제품에 들어가 전시됐다. 주최 측은 “3800여개 참가 업체 중 1500여개 업체가 자신의 제품에 AI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생활 속으로 다가온 로봇
로봇 역시 CES의 중요 화두였다. 아이를 보살피고 아이 영상을 부모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주는 보모 로봇, 주인 대신 집을 보고 빨래를 개며 유리창 청소까지 해주는 가사 로봇,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이동을 돕는 ‘아이언맨 슈트’인 웨어러블 근력증강 로봇 등 일상의 반려자로 다가온 로봇 기술이 대거 소개됐다. 로봇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나만을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하는 ‘퍼스널 로봇(PR)’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봇은 AI,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핵심 기술의 종합판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클라우드 기술과 재료공학, 나노기술은 최근 로봇산업 급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클라우드에 연결된 빅데이터로 인해 로봇의 인지·학습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재료공학 덕에 로봇 크기와 모양을 바꾸거나 액체자석을 활용해 좀 더 사람에게 가까운 자연스러운 동작이 가능해지고 있다.
로봇산업의 발전 양상은 컴퓨터·스마트폰과 비슷한 궤적을 보이고 있다. MS 윈도나 iOS, 안드로이드처럼 표준 OS가 등장하면 응용 소프트웨어와 관련 기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기업 간에는 벌써부터 로봇 플랫폼 주도권 싸움이 불붙었다. 여기에 세계 4위 로봇 생산업체인 독일 쿠카를 인수한 중국의 ‘로봇굴기’를 향한 파상 공세까지 예상된다.
쇼의 중심 차지한 중국
중국은 이번 CES에서 이전보다 훨씬 중심으로 옮겨온 느낌이었다. 전시회 참가 업체 3800여개 가운데 3분의 1인 1300여곳이 중국 기업이다. 사우스홀에 마련된 드론 전시관은 아예 중국 업체가 점령하다시피 했다. 특히 중국 ‘정보기술(IT) 벤처 요람’으로 떠오른 광둥성 선전 기업들이 대거 참가했다. CES 참가 업체를 소개하는 책자에 선전이라는 이름을 단 회사만 4쪽에 이를 정도다.
CES가 미국, 일본, 한국 기업들의 경연장이라는 것은 과거 얘기가 됐다. 가장 큰 전시장인 테크 이스트 중앙홀에는 삼성 LG 소니 등과 나란히 중국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웨이 TCL 하이얼 창훙 하이센스가 마치 삼성과 소니를 에워싸듯 주위에 대형 부스를 차렸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기업인 화웨이는 CES 주인공 같다. 컨벤션센터 곳곳에 붙은 대형 옥외 광고판은 화웨이가 독차지했다. 인근 메리어트호텔은 화웨이의 스마트폰 신제품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로 뒤덮였다. 이번 CES에서 리처드 유 화웨이 CEO는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인공지능 슈퍼폰을 만들겠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부상
혁신의 장이라는 CES에 스타트업 전시장이 생긴 것은 2012년이다. CES 50년 역사 중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중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숀 듀브라박 CTA 수석이코노미스트는 “CES 참가 기업 중 20%(약 700개)는 3년 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이제 스타트업은 CES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초기 스타트업 전용 전시관인 ‘유레카 파크’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부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작은 기업들이지만, 눈에 띄는 제품 주변에는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 설명을 듣기조차 힘들었다. 주로 AI 기능을 더한 로봇, 헬스케어 제품에 관람객이 몰렸다. CES에 참가한 이해선 코웨이 사장은 “예전보다 작은 기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아마존 알렉사 같은 AI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게 되면서 작은 제조업체도 대기업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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