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빨아들이는 트럼프] "미국에 투자하라, 싫으면 세금 내라"…산업지도 바꾸는 트럼프

입력 2017-01-10 17:24
수정 2017-01-11 05:00
자동차업계 게임체인저 트럼프

디트로이트모터쇼 CEO들 "룰 달라졌으면 따라야"
멕시코에 공장 가동 20개사, 글로벌 생산전략 고민 빠져

트럼프의 주고받기식 거래, 미국 산업기반 흔들 가능성도


[ 뉴욕=이심기/강현우 기자 ] 9일(현지시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17 북미 국제오토쇼’의 가장 큰 화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였다. 차세대 전기자동차 모델이나 자율주행 기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최고경영자(CEO)를 향한 첫 질문도 트럼프 당선자의 향후 미국시장 보호정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였다. 외신들은 트럼프 당선자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고 전했다.


◆산업지도 바꾸는 ‘트럼프 트위터’

세르조 마르키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미국으로 수출되는 외국산 차량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멕시코 공장을 폐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크라이슬러는 멕시코 공장 두 곳에서 연간 50만대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2015년에는 이 중 86%가 미국으로 수출됐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 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무관세 혜택을 받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이 멕시코 생산의 경제성을 떨어뜨리면 현지 생산을 철회해야 한다”며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멕시코에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미국의 ‘빅3’ 외에도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업체와 폭스바겐 등 독일 업체까지 20여개 완성차 공장이 가동 중이다. 이들 기업의 CEO 모두 크라이슬러와 똑같은 고민을 안게 된다. 2015년 멕시코에서 생산된 340만대 가운데 270만대가 수출됐는데 이 중 82%가 미국과 캐나다로 향했다.

반면 고율의 관세가 진입장벽이 되는 만큼 미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월가의 한 투자분석가는 “트럼프 당선자의 압박은 동전의 양면”이라며 “세계 최대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당선자가 기존 압박 패턴을 따른다면 다음 타깃은 BMW 등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BMW도 2019년 가동을 목표로 멕시코공장 건설을 시작했지만 완공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트럼프의 압박에 굴복하는 것은 미국 시장의 이점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공장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23.83달러(2015년 기준)로 독일(26.25달러) 다음으로 높다. 멕시코는 시간당 3.29달러에 불과하다. 미국 내 임금이 멕시코의 7.25배에 달하지만 설비자동화로 원가를 줄이고,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이점을 살린다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고립주의다”

반면 FT는 트럼프 당선자의 이 같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전략이 ‘미국 고립주의(America Alone)’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주고받기식 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 당선자의 전략적 사고가 세계화에 대한 반감을 통해 경제적 국수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차기 트럼프 정부의 고율관세 부과 위협이 자칫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더 큰 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GM은 트럼프 당선자의 ‘타깃 선정’이 불공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GM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멕시코공장 세 곳에서 70만대 차량을 수입했지만 부품의 70%는 미국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CEO는 “바뀐 규칙(rule)을 따라야겠지만 보호무역은 길게 보면 자유무역보다 잃는 게 더 많다”며 트럼프 당선자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협정이 한쪽에 불리하면 수정하는 것이 순리이며 협정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 디트로이트=강현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