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혁신TF 실리콘밸리를 가다
졸업생 21%가 창업…"실리콘밸리는 혁신으로 이글거리는 태양"
구글, 이메일·채팅으로 결재
임원실 없고 직원 협력 최우선
역동적인 기업가 정신 부러워
[ 김홍열 기자 ]
새로운 별이 떴다. 세상을 바꿀 ‘대세 기업’으로 불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기업 엔비디아가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7’ 개막일의 첫 기조연설자는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54)였다. 인텔 CEO를 밀어내고 기조연설자로 선정돼 주목받았다.
대만계 미국인인 황 CEO는 1993년 실리콘밸리 샌타클래라에서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1999년 당시 개념조차 생소한 그래픽처리반도체(GPU)를 설계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였다.
게임용 PC에 사용되던 GPU는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자동차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칩이다. PC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같은 역할을 한다. 6일 엔비디아 주가는 103.1달러를 기록했다. 1년 새 세 배 넘게 뛰었다.
실리콘밸리는 10년 주기로 인류에게 다른 세상을 열어줬다. 인텔이 그랬고,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그랬다. 1980년대 PC, 1990년대 인터넷, 2000년대 스마트폰 시대는 모두 실리콘밸리에서 잉태되고 확산됐다. 엔비디아는 그 연장선이다. 무엇이 실리콘밸리를 천지개벽의 진원지로 자리잡게 했을까. 왜 실리콘밸리로 기업이 몰리고, 인재가 몰리고, 돈이 몰릴까.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샌타크루즈까지 펼쳐진 4793㎢ 넓이의 최첨단 산업기술단지다. 이곳에는 2015년 기준으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1만4529개가 둥지를 틀었고, 1만6985명의 투자자가 활동 중이다. 러셀 핸콕 조인트벤처실리콘밸리연구소 대표가 “실리콘밸리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다”고 말한 이유다.
릴레이 투자, 성공을 나누는 문화
다양성은 실리콘밸리의 혁신 아이디어를 낳는 모태다. 실리콘밸리 전체 인구 중 외국 출생자 비율은 37%다. 인종별 구성을 보면 백인과 흑인이 각각 35%와 2%고, 아시아계가 32%, 중남미계 26%, 기타 4%다.
실리콘밸리와 그 주변엔 스탠퍼드대, UC버클리, 캘리포니아공대 등 31개 대학이 포진해 있다. 이들 대학은 인재를 길러 실리콘밸리로 공급한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젠슨 황도 스탠퍼드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은 번 돈을 스타트업에 쏟아붓는다. 스타트업으로 돈을 번 기업가들은 다시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구글이 실리콘밸리의 홈오토메이션 스타트업 네스트에 32억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성공을 나누는 투자 문화이고 생태계다.
서면·대면 결재 없는 구글
격의 없는 소통과 업무 방식, 빠른 의사결정 구조는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성공 코드다. 구글캠퍼스에서 만난 이준영 검색담당 매니저는 “구글엔 서면과 대면 결재가 없다”며 “이메일과 온라인 채팅만으로 결재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14년 전 구글에 입사한 첫 한국인이다. “세계에 퍼져 있는 구글 직원들과 스마트폰 화상회의시스템을 통해 하루 30분 단위로 협업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은 다섯 가지 단계를 거쳐야 성공한다고 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검증하고, 외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투자자를 모으고, 기업을 공개하는 과정이다. 단계마다 인력의 역량, 네트워크, 문화, 의사결정 구조가 달라 협력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업가 정신이 최대 엔진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최대 엔진은 강력한 기업가 정신과 프런티어 정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선 벤처캐피털 시에라벤처스 창업자인 피터 웬델 교수가 ‘기업가 정신과 벤처캐피털’을 주제로 22년째 강의하고 있다. 2015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졸업생의 창업률은 21%에 달했다.
실리콘밸리가 번성한 것은 규제당국이 몰려있는 미 동부의 반대편 서부에 자리잡은 덕분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운전자가 지난해 5월 자율주행을 하다 사망했지만 미국 정부가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반(反)기업 정서가 높아지고, 창업은 위험한 일로 인식되며, 취업 희망 1순위가 공무원이라면 한국에 미래는 없다.
실리콘밸리=김홍열 국제부장 comeon@hankyung.com
특별취재단 하영춘 부국장(단장), 윤성민 IT과학부장, 정종태 경제부장, 이건호 지식사회부장, 김홍열 국제부장, 노경목·강현우·남윤선·이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