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7시.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라운드에 선다.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자세를 잡자 운동화가 알아서 발의 압력을 측정한다. 스윙을 시작하자 몸의 무게 중심이 얼마나 이동하는 지 기록한다. 골퍼가 신고 있는 '스마트 골프화'가 하는 일이다. 골퍼는 이 똑똑한 골프화가 전달해준 정보를 스마트폰 앱으로 보면서 스윙 자세를 교정한다. 이어지는 라운드, 스윙 자세가 달라지자 비거리가 눈에 띄게 길어진다. 굿 샷이다.
스포츠의류가 정보통신기술(ICT)을 입고 스마트의류로 변하고 있다.
운동하기 편한 옷에서 입었을 때 예쁜 옷으로 발전한 스포츠의류는 이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고 건강까지 지켜주는 똑똑한 옷으로 진화한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은 ICT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콘셉트 제품을 내놓고 스마트의류 시장에 발빠르게 뛰어들었다.
◆ 美 언더아머, CES서 스마트 신발 공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행사 둘째 날인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 무대에 올랐다.
플랭크 CEO는 "우리는 기술 기업의 규모로 의류를 혁신하길 원한다"며 "만약 애플이나 삼성이 옷이나 신발을 만들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엔지니어들에게 묻곤 한다"고 말했다.
1996년 설립한 언더아머는 20년 만에 세계 최대 스포츠 브랜드 시장인 미국에서 나이키에 이어 2위에 오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스포츠 의류에 IT 기술을 접목한 최첨단 스마트의류 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15년에는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피트니스 분야 앱 두 개를 60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언더아머는 옷이나 신발이 스스로 사용자의 몸상태를 점검하고, 운동량을 측정하며 나아가 운동 능력을 높이고 라이프 스타일까지 변하게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플랭크 CEO는 이날 기조연설과 함께 언더아머가 만든 '스마트 잠옷'과 '스마트 신발'을 소개했다.
자는 동안 운동 능력을 회복시켜 준다는 콘셉트의 이 잠옷은 수면 시 땀을 흡수하고 원적외선을 생성해 숙면과 세포 재생을 돕는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UA레코드를 통해 사용자에게 맞는 숙면 온도도 알려준다.
'스마트 신발'은 사용자의 몸 상태를 점수로 보여준다. 운동을 하기 전 신발을 신고 점프를 6회 하면 그 기록을 바탕으로 운동을 하기에 몸 상태가 적당한 지 알려준다.
앞서 또 다른 미국 스포츠 브랜드인 리바이스는 구글과 함께 '스마트 재킷'을 개발했다. 이 재킷은 구글의 스마트 섬유 프로젝트인 '잭쿼드'를 상용화한 모델로 옷 자체가 일종의 터치 패드 역할을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옷소매를 만지는 것 만으로 전화를 받거나 음악을 듣는 등 스마트폰을 조작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길 안내도 받을 수 있다.
랄프로렌스포츠는 캐나다 스마트 의류 전문업체 옴시그널과 손잡고 사용자의 심박수와 호흡수, 스트레스 수준 등, 칼로리 소모량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운동복을 내놨다.
◆ 코오롱·블랙야크, 스마트 재킷 선보여
스포츠 브랜드들이 앞다퉈 스마트의류 개발에 나서는 건 IT를 결합한 제품들이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IT가 만나 자율주행차가 되고, 인터넷쇼핑은 IT 날개를 달아 드론 배송을 하는 것처럼 IT를 입은 스마트의류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 것이란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오는 2020년까지 스마트의류가 스마트시계 등을 포함한 전체 웨어러블 제품 시장에서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IDC는 지난해 0.6%에 불과했던 웨어러블 제품 내 스마트의류 비중이 2020년 7.3%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스포츠 브랜드들도 스마트의류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조난 시 조난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라이프텍 재킷'을 지난해 선보였다.
이 제품은 재킷 주머니에 블랙박스가 내장돼 있어 조난 시 지정된 연락처로 사진과 GPS 정보를 전송해준다. 재킷 앞부분에 소형 풍력 발전기(윈드 터빈)가 달려 있어 자가 발전을 통해 스마트폰 등 전자 기기도 충전할 수 있다.
블랙야크는 GPS를 이용해 사용자가 위치한 곳의 날씨에 맞춰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해주는 '야크온H' 재킷을 출시했다.
벤처 브랜드인 솔티드벤처는 골프 자세를 교정해주는 '스마트 골프화' 아이오핏으로 시장 주목을 받았다.
이 제품은 깔창에 내장한 센서가 사용자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걸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보내준다. 사용자는 스마트폰 앱으로 정보를 확인하면서 스윙 자세를 바로바로 교정할 수 있고, 프로 선수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사용자의 활동 정보를 측정하고 기록하는 데 그치는 액티비티 트래커에서 한 발 나아간 셈이다.
김보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포츠, 피트니스 분야를 중심으로 한 스마트의류는 우리 일상 속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며 "편의성에 디자인을 갖추고 똑똑함까지 단 스마트의류는 간병, 육아 등 점점 더 많은 분야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진/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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