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출신 스타트업 CEO 간담회
"작년엔 모래알이 많았는데 올해는 자갈도 보인다"
CES에 참가하는 스타트업…만만찮은 기술력 갖춰
창업 초기 삼성 인프라 활용…다른 회사가 못 누릴 호사
[ 남윤선 기자 ]
삼성전자는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창업을 유도하는 국내 유일의 대기업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창업자금까지 지원받고 독립한 ‘삼성의 아이들’은 이번 CES에서도 최고혁신상(망고슬래브)을 받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경제신문은 CES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삼성 출신 5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들과 CES 및 창업 생태계에 대한 간담회를 열었다.
안경 없이 3차원(3D) 입체 화면을 볼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모픽의 신창봉 대표, 악기 연습을 게임처럼 할 수 있게 돕는 기기를 파는 재미지의 전대영 대표, 센서가 결합된 벨트를 만드는 웰트의 강성지 대표, 헬멧에 붙이기만 하면 음악도 듣고 전화통화도 할 수 있는 기기를 제조하는 아날로그플러스의 박재흥 대표, 포스트잇용 프린터를 만드는 망고슬래브의 이우진 이사가 함께했다.
CES의 분위기를 묻자 강 대표는 “작년에 왔을 때 스타트업이 있는 유레카 파크는 그냥 모래알이 모여 있는 것 같았는데 올해는 묵직한 자갈이 보인다”며 “다들 만만치 않은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신 대표도 “다른 어느 전시회보다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관심을 끌려는 업체 간 경쟁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CES에 오는 스타트업의 수준이 점점 높아진다는 얘기다.
망고슬래브는 올해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전체 3800여개 업체 중 최고혁신상은 딱 35개사에만 돌아간다. 이 회사는 창업한 지 1년이 안 됐다. 웰트, 모픽 등도 창업 1년여 만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매출을 내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의 지원 덕이 컸다”고 했다. 강 대표는 “삼성 입사 전에도 창업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돈도 인력도 없어 힘들었다”며 “창업 초기에 삼성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1년 정도를 버틸 수 있는 투자금을 받는 건 정말 큰 도움”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시제품을 만든 뒤 삼성 베트남공장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반응을 조사할 수 있었다”며 “다른 스타트업은 못 누릴 호사를 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창업의 길은 험난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대표는 “제조업을 하다 보니 협력업체가 많이 필요한데, 믿을 만한 파트너를 찾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이사는 “삼성도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삼성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일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창업의 길을 택한 건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대표는 “사내벤처 시절 한 고등학교에 제품을 제공했는데, 음악을 싫어하던 아이들이 즐겁게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그때 모든 사람이 악기를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을 가졌고 망설임 없이 창업을 택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