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논문 심사비로 튄 '김영란법 불똥'

입력 2017-01-04 18:00
김영란법 시행 100일

학생이 내는 심사위원 '거마비'
권익위, 부정청탁으로 해석
일부 대학은 심사비 올려 충당

"미국선 논문심사가 교수 일상업무, 한국도 학교가 비용 부담해야"


[ 조아란 / 박상용 기자 ] 박사 논문을 심사할 때 학생들에게 심사위원 ‘거마비’를 내게 하는 대학가(街)의 오랜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불법’이라고 해석한 게 발단이 됐다. 일부 대학이 논문 심사비를 올려 거마비를 벌충하려 하자 학생들이 반발했다.

4일 각 대학에 따르면 숭실대는 학생 1명당 50만원씩 내던 박사 논문 심사비를 70만~110만원으로 인상했다. 김영란법 때문에 학생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거마비를 학교 측에서 논문 심사비를 올려(외부 대학교수 1명당 20만원씩) 대신 내주기 위해서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숭실대처럼 심사비를 올리는 방안에 동의하지만 애초에 거마비를 내지 않던 단과대학도 있어 일괄적인 인상이 쉽지 않다”며 “당장 다음 학기 논문 심사가 걱정이지만 학생들의 반발도 우려돼 인상안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사학위 논문 심사는 소속 대학교수 4~5명과 외부 대학교수 1~3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이뤄진다. 심사 대상자는 50만원 내외의 돈을 ‘심사비’로 내는 게 국내 대학의 관행이다. 심사비는 서울대·고려대·한양대 50만원, 성균관대 59만원, 숙명여대 10만원 등이다. 연세대와 중앙대는 등록금에 포함돼 논문 심사비를 별도로 내지 않는다.

외부 심사위원에게는 ‘위촉’을 대가로 교통비, 식비 등을 포함해 1인당 10만~50만원씩 거마비를 지급해왔다. 심사비에다 거마비까지 학생들이 갹출했던 셈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거마비를 받는 문화는 대학과 학과별로 다르다”며 “거마비가 없는 곳도 있지만 200만원씩 걷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권익위가 문제 삼은 건 거마비다. 지난해 9월28일 각 대학이 받은 ‘김영란법’에 따른 학위논문심사료 관련 안내 공문엔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논문심사 교수에게 식비 등을 제공하면 학생과 교수 모두 청탁금지법 제재 대상’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교수들이 다른 학교 논문심사위원회에 참석하길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대 관계자는 “자기 돈으로 교통비나 식사비, 숙박비를 들여가며 다른 대학에 가서 논문 심사를 맡을 교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 사정이 특히 열악하다. 외부 심사위원이 받는 심사비가 경주대 5만원, 공주대 4만7000원에 불과하다. 거마비는 따로 없다. 김영란법 시행 전에도 ‘단가’가 워낙 낮아 심사위원을 구할 때마다 애를 먹었다는 게 이들 대학의 얘기다. 경주대 관계자는 “서울, 수도권은 물론 대구에서조차도 교수들이 논문 심사를 하러 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거마비뿐만 아니라 ‘논문 심사비’라는 관행 전체에 손을 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대 관계자는 “미국에선 논문 심사를 교수의 일상적인 업무로 보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담하는 한국식의 심사비가 따로 없다”며 “외부 위원을 위촉할 때도 지도교수가 필요에 따라 요청하되 비용은 학교가 실비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조아란/박상용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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