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베한타임즈 공동기획 베트남 리포트
이계영 화승비나 대표 인터뷰
급격한 임금인상 추세 누그러뜨릴 것
신규 투자업체들은 단기 타격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달 20일 취임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공공연하게 밝혀 온 트럼프 정부의 출범은 베트남에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친화 정책으로 심혈을 기울여 초석을 만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미 트럼프는 TPP 반대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베트남은 TPP 최대 수혜국으로 평가받았다. 베트남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장벽이 사라지면서 베트남이 글로벌 가치사슬망(밸류체인)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글로벌 1위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등 내로라하는 대형 투자자들과 삼성 등 대형 제조업체들이 베트남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점에서 TPP 폐기는 베트남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 발을 들여 놓은 수많은 해외 기업들 입장에서도 지대한 관심 거리다. 한국경제신문과 베한타임즈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베트남 현지 전문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첫 회는 이계영 화승비나 대표(사진)다. 베트남 뿐만 아니라 중국, 몽고, 인도네시아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 대표는 얼마 전 화승비나를 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화승은 신발 OEM에서부터 화학, 소재, 자동차부품, 종합무역 등을 망라하는 그룹이다.
▶TPP가 무산되면 베트남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말이 많습니다.
“심리적으로 제조업 투자가 위축될 수 있어요. TPP 특수가 사라지면 베트남 정부가 당초 예상한 10%대 성장률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세계은행도 내년 베트남 경제 성장률을 6.3%로 예상하고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TPP가 베트남이 보유한 잠재 성장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현지 진출한 기업들의 ‘체감 온도’는 어떤가요.
“TPP 발효를 예상하고 투자한 기업들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겠죠. 하지만 TPP무효가 베트남의 매력을 상쇄할 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베트남만한 곳을 주변국에서 당분간 찾기도 어려울 것이고요.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생산성과 내수 등 기타 경쟁력을 감안해보면 아직 베트남을 따라오려면 멀었습니다.”
▶득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업체들 입장에선 크게 달라질 게 없어요. 오히려 TPP가 발효되면 현지 임금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지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존에 터를 잡은 신발, 섬유업체들은 당분간 안정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죠.”
▶TPP 발효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각이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TPP가 발표돼 산업화, 도시화가 진전되면 중국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걱정이 있었어요. 임금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란 우려였죠. 2015년까지도 매년 임금 상승률이 두 자릿수였거든요. 노동력이 단순 제조업에서 이탈하는 문제도 한국 기업으로선 간과할 수 없는 얘기에요.”
▶신규 투자를 한 곳들은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미국, 일본 시장을 겨냥해 새로 진입한 업체들, 투자를 추진 중인 곳들은 타격이 불가피할 겁니다. 섬유만해도 미국에 수출하려면 평균 10% 내외의 관세가 붙는데 TPP가 발효되면 관세가 상당폭 내려가게 됩니다. 이를 노리고 베트남에 투자한 곳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TPP가 무산되면 다른 국가로 수주가 넘어갈 가능성도 있으니 몇몇 OEM 업체들은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현지 정부도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중국 주도의 RCEP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죠. 베트남은 이미 한국을 비롯해 일본, EU와 FTA를 체결한 상태입니다. 양자간 무역협정은 다른 국가로도 확대 중이고요. 중요한 점은 아직 불확실한 게 많다는 겁니다. 트럼프 정부가 아직 출범하지도 않았고요. 길게는 올해 11월 다낭에서 열리는 APEC 지도자회의에서 베트남 정부의 태도에 주목해봐야할 겁니다. 어떤 전략으로 국가 간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지 윤곽이 나올 테니까요.”
▶제조업 중심의 진출 전략을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베트남이 아직은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점점 구매력이 높은 중산층의 증가로 소비, 문화, 콘텐츠 등의 서비스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베트남은 안정된 물가와 1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에요. 내수시장의 매력이 큽니다. 우리 기업들도 내수 유망 분야에 대한 진출 전략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TPP 무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베트남 정부도 자국 내 부채를 줄이고 산업 구조를 개혁하는 등 내실화 정책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중국처럼 내수 시장의 활성화에 공을 들일 것이란 얘기죠. 이를 위해 작년 9월까지 48개의 국영기업을 매각해 2조8000억동을 회수했습니다. 2020년까지 현재 19개의 산업, 718개의 국영 기업 체제를 12개 산업, 190개 기업만 남기고 전부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내수 시장을 공략하려는 기업들은 이런 정부의 정책 변화를 눈 여겨 봐야 합니다.”
▶어떤 분야가 유망한가요.
“KOTRA는 외국인 투자진출이 유망한 분야로 프랜차이즈, 물류, 호텔숙박업, 유통서비스 등 네 분야를 꼽았습니다. 아울러 소매 유통시장의 현대화, 온라인화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여기에도 기회가 있을 겁니다. 베트남의 도시화율은 여전히 30% 수준에 불과합니다. 아직은 재래시장 및 소규모 영세 상점의 비중이 높지만 소득 수준이 늘고, 중산층 규모가 커지면서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 현대적 유통망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게 진행될 겁니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유망하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2015년 베트남 전자상거래 시장의 규모는 약 40억 달러에 달했어요. 전년 대비 50% 성장했죠. 모바일 통신 가입자수가 이미 1억명을 넘었습니다. 베트남은 40대 미만의 인구가 60%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젊은 나라입니다. 이들 2030 세대들이 소비의 주역으로 급부상하면서 모바일과 관련된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베트남 진출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분명히 베트남은 중국과 인도를 대체할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기업들이 베트남을 기회의 땅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는 신천지라는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베트남은 양면성을 가진 시장입니다. 한동안 신천지처럼 보일지라도 곧 신기루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시장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변화가 많고, 불확실성도 높은 시장입니다.”
▶어떤 점에 유의해야할까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과 경영자의 마인드가 신천지와 신기루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변화하는 정책과 경제 환경에 맞게 기업의 전략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마인드가 중요해요. 단순 저임금 기반의 생산 방식으로는 ‘신천지’로서의 매력은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베트남에서의 업무와 생산 방식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업무의 시스템화, 자동화를 통해 스마트한 경쟁기반을 재구축 해야만 새로운 신천지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사업의 수직·수평 계열화를 통해 기업의 밸류체인을 재구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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