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자발적으로 LG와 오뚜기 홍보에 나섰을까... 브랜드가 곧 인격이다"

입력 2017-01-03 18:22
수정 2017-01-04 09:04


(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보다 못한 소비자들이 나섰다. 기업 홍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LG와 오뚜기 얘기다. 주로 미담이다. 소비자들은 스스로 왜 이 회사 제품을 사야하는지 얘기한다. 수많은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브랜드 생태계에서 발생한 마이크로트렌드다. 이 움직임에 관심을 갖는 것은 메가트렌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치를 찾아 나선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곧 사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호사분면>

얼마전 직장인들 사이에서 호사분면이 화제였다. 상사들을 평가하는 매트릭스였다. 보스턴컨설팅이 개발한 4개 분면으로 된 매트릭스을 응용한 것.

가로축은 일 잘함과 일 못함을 나타낸다. 세로축은 착함과 싸가지로 표시돼 있다. 일 잘하고 착한 상사는 ‘호인’, 일 잘하고 차가운 상사는 ‘호랭이’, 무능하고 따듯한 상사는 ‘호구’, 무능하고 차가운 상사는 ‘호로새끼’로 구분했다.

“당신은 직장에서 어떤 상사입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상사들이 곤혹스러워 했다. 다들 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 매트릭스를 보내준 후배에게 물었다. “이걸 왜 보냈냐?” 그 후배는 “ㅋㅋㅋㅋㅋ” 라고 답했다. 옆에 있었으면 주먹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 같았다. 호인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최악의 케이스는 후배들은 호로새끼라 부르는데, 자신은 호인이라고 생각하는 상사일 듯.

<브랜드 매트릭스>

이 호사분면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수잔 피스크는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 드는가>에서 브랜드 매트릭스 제시한다. 그것과 구조가 똑같다.

따뜻한과 차가움, 유능함과 무능함을 가지고 브랜드의 현재 상태를 설명한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능력있고, 위쪽으로 갈수록 따듯한 브랜드다. 왼쪽으로 가면 무능하고, 아래쪽으로 가면 차가운 브랜드다. 왼쪽 아래는 호사분면으로 치면 호로새끼에 해당하는 브랜드다.

이 브랜드 매트릭스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피스크는 진화심리학을 끌어들인다.

“악어의 가죽도 사자의 이빨도 없는 인간은 살아남았다. 원시시대부터 생존에 필요한 감각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두가지 감각이 가장 중요하다. 첫 번째는 무언가 다가오면 의도(따듯함과 차가움)를 파악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유능과 무능)를 재빨리 간파하는 능력이다. 이 감각은 현대에 와서 브랜드에도 적용된다. 브랜드가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에 대한 감정도 인간에 대한 감정과 비슷하다. 따듯하고 유능한 브랜드(호인)에 대해서는 존경과 유대감을 느낀다. 유능하고 차가운 브랜드(호랭이)에 대해서는 질투와 시기감을, 따듯하고 무능한 브랜드(호구)에 대해서는 동정과 연민을, 차갑고 무능한 브랜드(호로새끼)에 대해서는 결멸감과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마케팅 '무능력자' LG>

많은 소비자들이 LG를 '마케팅에는 젬병이'라고 평가한다. 있는 장점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LG제품이 갖고 있는 강점을 소비자들이 직접 찾아 SNS에 소개한다. 충격에 깨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고 퍼날랐다. LG전자가 가벼운 노트북을 발표하자, 네티즌들은 그들이 발표한 무게보다 실제무게는 더 가볍다며 저울에 올려진 노트북 사진을 올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토네이도를 견뎌내고, 정상 작동하는 LG냉장고도 소비자가 직접 발굴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알리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기업의 흔적, 역사를 뒤지고, 기업이 갖고 있는 영혼을 논하기 시작했다.

<독립군 지원한 LG>

“LG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은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어요.”

이 한 문장은 소비자들을 움직였다. LG제품의 장점을 탐색하게 만들었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LG가 남모르게 한 선행을 찾아냈다. 그리고 퍼날랐다. ‘의인상’이 그것이다. LG는 선행한 사람을 찾아 수천만원씩 지원한다. 본인이 원치 않으면 알리지도 않는다. 소비자들은 이 대목을 높이 샀다. 사회공헌 한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LG제품을 사자고 말하고 다닌다.

작년 격랑속에 LG는 더욱 빛났다. LG도 다른 대기업처럼 미르재단을 지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대가성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LG는 화답이라도 하듯 미르재단 모금을 대행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가장 먼저 공식선언했다.

소비자들은 LG가 보여준 일련의 행동을 일렬로 세워놓고 보기 시작했다. LG의 의미를.

<비정규직 없는 오뚜기>

오뚜기는 창업자 덕을 봤다.

오뚜기를 창업한 함태호 명예회장은 작년에 별세했다. 그의 별세소식과 함께 그가 평생을 해온 어린이 지원사업이 화제가 됐다. 함 회장은 1992년부터 수십년간 꾸준히 심장병 어린이를 도왔다. 지금까지 4000명에 가까운 어린이가 도움을 받았다. 새 생명을 얻었다. 오뚜기는 고인의 뜻에 따라 알리지 않았지만, 얘기는 퍼져가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오뚜기의 또다른 스토리를 찾아냈다. 비정규직이 없는 회사란 게 포인트였다. 작년 11월14일 오뚜기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는 남 948명, 여 2113명 등 모두 3061명이다. 기간제 근로자(임시자)는 0명이다.

이 사실을 알린 것도 네티즌들이다. 그들은 그리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오늘부터 오뚜기 라면을 먹겠다.”

<브랜드의 인격화>

왜 소비자들은 이런 일에 나섰을까.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의 코드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의 코드는 악당이다. 호사분면으로 보면 호랭이에 가깝다. 두 회사는 이 코드에서 벗어나 있다. 이 의외성에 소비자들은 반응을 보였다. 따듯함과 능력있는 브랜드에 대한 갈망이 깔려져 있다.

다음 포인트는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겸손함에 대해 소비자들은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

한국의 소비문화는 변화를 거쳤다. 1990년대는 자기과시적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실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기능이 중요했고, 내구성이 중요했다. 몇 년전부터는 가성비가 한국 소비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브랜드를 인격화하는 흐름은 또다른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기업의 히스토리를 탐구하고, 자신이 소비하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소비자를 본다. (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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