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한타임즈] 베트남과 한국의 세 가지 인연

입력 2017-01-03 08:14
수정 2017-01-03 09:10
“베트남과 한국의 세 가지 인연”

몰락한 안남 왕족, 고려에 정착해 몽골군 격퇴에 조력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미국 선진시스템 배워
1억 내수 베트남, 저성장 대한민국호에 주어진 기회



베트남은 우리와 인연이 깊은 나라다. 육로는 중국에 막혀 있고, 해로도 멀어 교류가 잦은 편은 아니었지만 베트남은 위기에 처한 ‘한반도’에 구원의 역할을 했다. 약 1000년의 세 월 동안 한-베트남은 총 세 번의 대연(大緣)을 맺었다.

첫 번째 인연의 키워드는 ‘화산 이(李)씨’다. 귀화한 베트남 왕손의 후예들인 화산 이씨는 1226년 멸망한 안남국 이씨 왕조의 6세손인 이용상에서부터 시작됐다. 화(禍)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려던 그는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황해도 웅진현에 있는 창진도에 다다르게 되고, 당시 고려를 다스리던 고종은 망국의 후손을 받아들이고, 성까지 하사했다.

이용상은 고려 왕조가 몽골의 침입을 막는데 혁혁한 공을 여러차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안남국은 약 1천년 간 이어져 오던 중국 지배를 무너뜨리고 독립을 쟁취한 왕조로 중국 왕조와의 전쟁 경험이 많았다. 이 같은 군사 지식을 활용해 당시 고려 왕조의 군사 고문격으로 활약했다. 몽골군이 화해의 뜻으로 고려 왕실에 보낸 함이 함정인 것을 알아채고 고려 왕실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일화도 꽤 유명한 일화다. 몽골식 ‘트로이의 목마’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함에 숨어 있던 자객들을 비명횡사시켰다니 고려 왕실이 얼마나 귀하게 대접했을 지가 짐작이 간다.

조선 건국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베트남 관계는 단절이나 마찬가지였을 정도로 소원했다. 그러다 1964년~1973년 부산항 부두를 통해 한국군을 베트남으로 파병하면서 다시 연을 맺게 된다. ‘악연’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이 때 베트남 전쟁에서 쌓은 경험은 훗날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을 일컫는 ‘한강의 기적’을 달성하는데 소중한 자산이 된다.

베트남전쟁사(史) 전공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시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한국군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실제 모습을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였다. 비록 베트남이 당시 미국의 국력으로 보면 전면전을 치를 만큼 큰 나라는 아니었지만 장기전으로 치달으면서 미국은 거의 전력을 동원해 베트남 북부의 공산주의자들과 전투를 벌였다. 한국군 입장에선 모든 게 배울 거였다. 미군용 군수 물자를 보급받을 수 있었는데 하다못해 군용 지프차만해도 한국 엔지니어들 입장에선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로 보였다.

5·16 쿠데타로 군사 정부가 집권한 탓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은 엘리트들의 집합소나 다름없었다. 기업들도 군수 지원을 위해 베트남으로 여럿 나갔다. 이들은 미군이 사용하는 각종 장비와 물자들을 사용하고, 설계도면을 베껴 그리면서 선진 기술을 습득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파병의 대가로 벌어들인 ‘달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종자돈이 되기도 했다. 이때만해도 한국은 필리핀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후진국으로 평가받았으나 베트남전 이후 한국은 아시아의 네마리 용(龍)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고속 성장을 하게 된다.

1992년 한-베트남 수교로 그간 끊어졌던 다리가 이어지면서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세번째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베트남엔 삼성, LG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수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누적 기준으로 베트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나라는 한국이다. 지금도 하루에만 수십개의 기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다. 교류 방면도 단순 봉제 등 제조업에서 휴대폰 등 첨단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류 콘텐츠, 유통, 교육, 금융 등 서비스 분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대한민국호(號)는 ‘2%대 성장률’이라는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독일, 일본 등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들은 ‘인스트트리 4.0’ 혹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제조업 혁신을 통해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미국은 모바일 기반의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 전세계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미국의 IT 글로벌 기업에 있는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불과 28세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은 세계 최대 내수를 기반으로 제조와 플랫폼 혁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태세다.

우리 사정은 어떠한가. 19세기 말의 혼란을 보는 듯 정쟁에 휩싸여 경제 전쟁이란 피할 수 없는 경쟁에서 지체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이런 점에서 베트남은 한국에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이 처한 한계를 돌파하려면 1억 내수를 가진, 젊은 나라 베트남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이 베트남 특집을 연중 연재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 알찬 콘텐츠 제공을 위해 앞으로 연재될 기사는 베트남 호치민 현지 언론사인 베한타임즈(대표 김종각)와 공동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베한타임즈는 2007년 4월 베트남한국교민신문으로 창간돼 2012년 12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정식 신문허가를 받아 베한타임즈로 사명을 변경했다. 베트남 내 외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베트남 언론사다.

김종각 대표는 “베트남과 한국 간 경제, 문화, 교육 등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경과의 공동 기획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베트남 분석 기사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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