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빈삼각의 묘(妙)

입력 2017-01-01 18:38
조훈현 < 새누리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


바둑의 성인(棋聖)으로 칭송받는 우칭위안 선생은 바둑을 조화(調和)라고 했다. 이 조화란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대와 계속 응수하며 만들어 내는 균형이다. 그런데 좋은 모양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에게 급소를 공략당해 애써 만든 형태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나의 모양을 키우기보다는 상대 진영을 견제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 선생도 좋은 포석은 포진을 잘하기보다는 상대의 모양을 우형(愚形)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형은 비효율적이고 발전성도 떨어지는 어리석은 모양새를 말한다. 빈삼각이 대표적이다. 바둑돌 세 개가 직각삼각형 모양으로 모여 있으니 둔하고 중복이다. 프로에게는 당연히 기피 대상이다. 나 역시 결코 발이 느린 스타일이 아니다. 가볍고도 빠르게 요처를 누빈 다음 효율적으로 갈무리하는 기풍을 바둑계에서는 ‘제비’ ‘속력행마’ 등의 별칭으로 불러줬다. 그런 나도 빈삼각을 한 번이 아니라 연거푸 세 번을 둔 적이 있다.

제1회 잉창치배 4강전, 상대는 린하이펑. 이십대 중반에 ‘면도날’ 사카다를 부러뜨린 이래 20년간 정상을 지킨, ‘이중허리’의 명장이었다. 1988년 가을, 그날 모양은 사나웠지만 빈삼각만이 통하는 수였다. 고정관념을 버리자 승부의 흐름이 내게 왔고 결승까지 올라가 ‘바둑의 올림픽’이라는 잉창치배의 첫 번째 우승자가 될 수 있었다. ‘빈삼각의 묘수’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국회에 들어온 뒤 정국의 전망에 대한 의견을 요구받는 일이 많다. 2016년 후반부터 휘몰아치고 있는 현 정세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질문은 그 속에 있는 나의 입장과 행보가 어떤지를 묻는 것이다. 답이 궁하다. 쉽지가 않다.

정치인으로서 초선에 비례대표라는 점은 이미 내게 주어진 조건이다. 어떤 수를 두든 지금은 빈삼각처럼 보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바둑 한수 한수의 선악이 그때로 정해지는 게 아닌 것처럼 정치에서도 전체적으로 성과를 내는 수들을 두고 싶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유리할 수 있고, 느림이 빠름을 앞서듯 고정관념을 깨는 빈삼각도 둘 수 있어야 진정한 고수가 아닐까 한다.

2017년 정유년 새해는 ‘희망과 개벽’을 의미하는 붉은 닭의 해다. 우렁찬 닭 울음소리가 새 아침,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우리 정치도 빈삼각의 의미를 다시금 되뇌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상생의 묘수’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훈현 < 새누리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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