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국정, 위협받는 경제
정치는 오로지 정쟁뿐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법
규제개혁과 관치경제 청산
정부와 정치권력 줄이고
자유시장경제체제 공고히 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충만한
역동적인 사회 만들어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장 jwan@khu.ac.kr >
2016년 병신년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무겁다. 혼돈의 한 해였다. 병신년 벽두부터 중국 증시의 폭락과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며 불안하더니 끝내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졌다. 연이은 북한의 5차 핵실험 도발에 따른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됐고, 선거와 정치적 갈등으로 국정은 표류했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꼭 했어야 할 구조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사태는 물론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외부 상황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로 한·미 통상관계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중 간 무역마찰의 고조로 그 사이에 낀 우리 경제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외국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될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민생과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이합집산하며 정쟁만 일삼고 있다. 마치 권력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대립하는 조선의 사색당파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정치가 파행으로 치닫는 사이 경제는 점점 멍들어갔다. 경제성장률은 2%대로 떨어졌고 청년 실업은 더 늘어났다. 국민의 시름은 깊어졌으며,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외 연구소들이 내놓는 비관적인 경제 전망은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만들고 일군 대한민국인데 여기서 멈춘단 말인가. 우리에겐 숱한 역경과 고난을 딛고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저력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는 나라가 60년 만에 3만달러 가까이 된 나라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저력은 이번 촛불 시위에서도 잘 드러났다.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음에도 무력충돌과 같은 소동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번 촛불 시위에는 그동안 내재돼 있던 우리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공정하고 정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더 나은 사회로 나가려는 국민의 염원이 담겨 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그러나 촛불에 담긴 국민적 염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중요하다. 이 에너지가 단순히 정권교체에 이용되고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나눠먹기식 복지지향적인 방향으로 갈 경우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르헨티나나 그리스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도, 가야 할 방향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고 가야 할 방향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충만한 사회다. 그것은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촛불에 담겨 있는 그 에너지를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사실 지금 우리 경제가 쇠퇴해 가면서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것도 지난 20여년 동안 취해진 기업 활동과 개인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수많은 규제와 조치로 인해 우리가 점점 시장경제체제로부터 멀어져 갔기 때문이다.
더 낫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감한 규제 개혁을 통해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정부와 정치의 권력을 확실하게 줄인 작은 정부를 실현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충만한 역동적인 사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 권력의 비대함으로 인해 초래되는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사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혼돈은 또 다른 질서를 낳는다. 그 새로운 질서가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비록 혼돈의 병신년을 보내는 마음은 무겁지만 앞으로 우리가 정부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가 충만한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지혜와 의지를 모은다면 다가오는 정유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해로 떠오를 것이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장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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