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정착촌 건설 중단 결의안
트럼프 "거부" vs 오바마 "기권"
[ 임근호 기자 ] 팔레스타인 자치령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이집트는 22일(현지시간) 당초 이날 오후 3시에 예정된 안보리의 결의안 표결을 돌연 연기했다.
이집트 대통령궁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자의 전화를 받았다”며 “두 정상은 새로운 미국 정부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의 기회를 주는 데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이스라엘에 관한 유엔 결의안은 거부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이후 나온 조치였다. 이 같은 발언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미국 CNN 등이 보도했다.
이스라엘 고위당국자는 CNN에 “오바마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느낀 뒤 트럼프 당선자와 접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며 “우리는 당선자와 접촉했고, 그가 (이 사안에) 관여한 데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 편에 서서 결의안을 무산시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좀 더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트럼프 당선자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결의안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 기권할 예정이었다고 로이터통신이 익명의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2011년 이스라엘 정착촌과 관련한 비슷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이번에도 같은 태도를 취할지는 불확실하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 미국이 표결에 기권하면 이번 결의안은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동안 정착촌 확대는 비판하면서도 이스라엘 반대편에 서는 데에는 신중했던 미국 정부의 태도와 상반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직 취임 전인 트럼프 당선자의 개입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DC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 부회장은 “당선자가 공개적으로 정부가 결의안을 거부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것은 물론, 취임하기 전 현 정부 정책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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