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점거농성…'개혁 골든타임' 놓치는 대학들

입력 2016-12-22 18:08
수정 2016-12-23 05:41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대학 '불통'인가…학생들 '떼법'인가

혁신 불씨 꺼지는 대학
고려대·이대, 미래대 계획 철회
서울대·서강대 제2캠퍼스 갈등

토론문화 실종…비판만 난무
"소통 외치던 학생들, 토론 거부"
"권위적 대학 풍토도 한몫"


[ 황정환 기자 ] 국내 유수 대학이 저마다 구상해온 개혁 사업을 속속 접고 있다. 학생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면서다. 이화여대 사태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을 둘러싼 촛불 정국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대학 구조개혁은 이번에도 물 건너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이 구성원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책임도 있지만 생산적인 토론 문화가 생략된 채 학생들의 ‘떼법’이 통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혁신 동력 꺼지는 대학들

고려대에선 22일 미래대학(크림슨칼리지) 설립 계획 철회를 놓고 뒤늦은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고려대 교수는 “미래대학은 학제 간 융합,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불어닥치는 지금 기존 대학의 틀을 깨는 도전이었다”며 “앞으로 누가 혁신을 외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말했다.

미래대는 전공 간 경계를 허물고 미래 사회의 유망 산업 분야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염재호 총장이 설립을 추진한 신설 학부다. 염 총장은 미래대 설립에 강한 의욕을 보였지만 전날 “구성원 간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며 철회를 선언했다.

이화여대의 평생교육단과대(미래라이프대) 설립 철회 이후 두 번째다. 고려대의 미래대는 교육개혁의 핵심인 ‘산업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교육’과 발을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사회적 수요가 부족한 학과 인원을 줄이고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산업을 뒷받침할 인재를 길러내는 데 초점을 뒀다. ‘학위 장사’ 논란이 인 미래라이프대와 맥락이 다르다. 동덕여대도 문·이과나 학과 구분 없이 학생을 선발해 융합 교육을 한다는 취지로 미래인재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학내 갈등을 겪고 있다.

서울대와 서강대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제2캠퍼스도 ‘산학협력 강화’라는 맥락에서 혁신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서울대는 시흥캠퍼스를 드론·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연구의 전초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지만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토론문화 실종된 대학

대학들은 구조개혁이 절실하지만 촛불 정국에 학내 갈등이 깊어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대학이 개혁을 추진하면서 구성원과의 소통을 소홀히 해 분란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서울대 원로 교수는 “학생들의 불신엔 학생을 대화상대가 아니라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본 권위적 대학 행정의 풍토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불신에서 비롯된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고려대가 미래대 설립 계획을 백지화했지만 총학생회는 학생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협의체 신설 등 다른 요구가 성사될 때까지 점거 농성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서울대도 학생들이 우려하던 기숙형캠퍼스(RC) 계획 철회를 약속하고 총학이 요구한 학교·학생 간 소통기구를 신설하며 협상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한 서울대 교수는 “학생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고 있다”며 “생산적 토론문화가 실종된 점이 무엇보다 아쉽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특유의 보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서울대 공대 교수는 “10년째 갈등을 빚어온 시흥캠퍼스를 올해부터 본격 추진한 것은 ‘내 임기 중엔 안 된다’는 보신주의에서 벗어난 노력이었는데 또다시 표류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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