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기자의 여풍당당 (1)
노조위원장 출신
호주계 은행서 노조 설립…200일 넘는 파업·단식투쟁
외유내강 리더십
38세에 부도난 자동차 제조사 인수…공장서 8년간 동고동락
이젠 직원 750여명 이끌며 매출 3900억 금탑산업훈장
사내 주주 사내협력사 실험…지난해 16곳 모두 수익 내
[ 김정은 기자 ]
‘여성기업’은 여성이 대표로 있는 회사를 말한다. 국내 여성기업은 총 134만여개로 전체 기업(341만개)의 약 39%를 차지한다. 여성기업의 수익성(매출 대비 이익률)은 5.1%로 일반 기업(3.6%)보다 높다. 하지만 여성기업의 95%가 직원 5명 이하이며 평균 업력은 10년에 불과하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전문화와 개별화가 중요하다. 섬세하고 꼼꼼하면서도 창의적인 여성의 장점과 잘 맞아떨어진다. 한국경제신문은 각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여성 강소기업을 발굴해 소개하고자 한다.
성신여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여자가 오래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가 외국계 은행에 취업했다. 호주계 웨스트팩은행으로 옮겨 노조를 설립한 뒤 첫 여성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1994년, 200일이 넘는 파업을 이끌며 호주 본사 앞에서 1주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38세 때이던 1998년, 부도가 난 경북 경주시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를 인수해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어느덧 직원 750명, 매출 39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7일 열린 여성경제인의 날 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김선현 오토그룹 회장(사진) 얘기다.
◆‘직원이 주인’ 경영실험
서울 태평로 오토그룹 서울사무소에서 22일 만난 김 회장의 관심사는 ‘사내주주형 사내협력사 제도’였다. 지난해 시작한 경영실험은 업계의 화제를 모았다. 마음 맞는 생산직 직원들이 15~30명씩 독립해 사내 협력사를 세우고, 그 협력사가 본사(오토)로부터 물량을 수주해 납품하는 방식이다.
그는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일하는 환경을 만들면 회사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과거 노조위원장으로 일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모회사 격인 오토인더스트리에서 5개 협력사, 계열사 네오오토에서 11개 협력사가 독립했다. 자본금은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충당한다. 협력사 대표와 임원진은 사원주주들이 투표로 선출한다. 지난 1년의 성과를 결산해 보니 모든 협력사가 수익을 냈다. 김 회장은 “구성원들이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면서 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렸다”며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생겨 이직률이 1% 수준으로 낮아진 것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8년간 현장직원과 동고동락”
오토인더스트리, 네오오토, 모토, 오토비나(베트남 법인) 등으로 구성된 오토그룹은 자동차용 변속기(기어)를 만든다. 초정밀 기어류 부품을 1년에 3700만개 납품한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3년 기아자동차로부터 초정밀 기어 중에서도 중요도가 높은 ‘4대(大) 기어’를 처음 수주했다. 4대 기어는 변속기에서 동력을 전달하는 핵심 부품이다. 자체 생산을 고집하던 현대자동차가 4대 기어 생산을 외부에 맡긴 건 처음이다.
성공한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불리지만 처음엔 제조업 특유의 군대 같은 분위기가 낯설었다. 그는 “창업 초기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다”며 “낡은 아반떼를 타고 다니면서 경주 생산공장에서 8년간 직원들과 동고동락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여성 CEO가 직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성보다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든다”며 “하지만 지속 가능한 기업경영엔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때로는 단호한 ‘외유내강’ 리더십이 더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사회공헌은 기업 의무”
김 회장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상하이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김가진 선생이고, 할머니 정정화 선생은 ‘조선의 잔다르크’라고 불렸던 여성 독립운동가다. 부친 김자동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오토그룹은 임시정부 기념사업 활동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그는 오토를 ‘직원 자녀들까지 보내고 싶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 김 회장은 “봄과 가을에 마라톤 대회를 열고 직원들에게 ㎞당 1만원씩 주는데 우리 직원들은 이 절반을 지역사회에 기부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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