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완벽한 계획보다 약간의 무질서가 혁신 이끈다

입력 2016-12-22 17:31
수정 2016-12-23 05:22
메시

팀 하포드 지음 / 윤영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448쪽 / 1만6800원


[ 양병훈 기자 ]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메일을 사용하는 시간의 약 10%를 폴더를 만들어 받은 메일을 분류하는 데 쓴다. 하지만 정리를 잘해놓는다고 해서 특정 이메일이 필요할 때 그걸 빨리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스티브 휘태커 미국 UC샌타크루즈 교수와 IBM연구소는 2011년 사람들이 필요한 이메일을 찾는 작업을 8만5000여번 추적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폴더의 트리 구조에서 원하는 이메일을 찾을 때는 대략 1분이,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찾을 때는 17초가 걸렸다. 모든 이메일을 하나의 편지함에 쏟아붓는 게 필요한 메일을 찾는 데 더 효율적이었다.

세계적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를 쓴 팀 하포드는 《메시》에서 “완벽한 계획을 약간 엉성하게 바꾸는 게 혁신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메시(messy)’는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인 상태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저자에 따르면 수량화된 목표는 취지에 맞지 않는 잡무를 유발한다. 깔끔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기력과 의욕 저하를 느끼기 쉽다. 아이들은 잘 꾸며진 놀이터에서보다 버려진 공터에서 뛰어노는 걸 훨씬 재미있어한다.

저자는 “우리가 세우는 많은 계획은 사실 어떤 일을 실행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을 방해하는 요소”라며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수용할 때 의욕이 커지고 혁신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도널드 트럼프가 부상하고 젭 부시가 가라앉은 게 대표적이다. 당시 부시 진영은 불법 이민같이 민감한 이슈에 매우 조심스럽게 대처했다. 각종 이슈에 대해 부시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균형 잡힌 발언을 했다.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의 밑바닥 정서를 자극하는 선동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트럼프의 발언 중엔 정제되지 않은 즉석 발언이 많았다. 저자는 “평생 정치를 해온 트럼프의 경쟁자들은 깔끔하게 정리된 상황을 추구했다”며 “하지만 그들이 공들여 준비한 연설이나 발표보다도 트럼프의 재빠른 트윗 한 줄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지지율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줬던 전략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맹신하고 있던 시스템에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지 못한 기회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깔끔하게 산출된 데이터를 헤집어보는 것, 효율적인 절차 속에 잡음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질서정연함 그 자체가 성공의 원인이 된다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한 몰입과 다양한 시도를 성공의 원인으로 꼽는 게 더 사실과 가깝다. 계획과 실행의 표본인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만든 벤저민 프랭클린도 중요한 서류를 여기저기 쌓아둘 만큼 정리정돈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메시형 인간들이야말로 현실이 어렵고 여건이 열악할수록 더 좋은 해법을 찾는 인재들”이라며 “정체된 업무 성과, 해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개인과 조직이라면 메시적 방법론으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