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이의범 SG그룹 회장 "책 보고 독학으로 아마5단…바둑 통해 기다리는 법 배웠죠"

입력 2016-12-20 19:36
나의 힐링비법

우칭위안 일대기 읽고 감명
생활체육 바둑협회장 역임
올해 스크린골프사업 도전장


[ 최진석 기자 ] ‘신물경속(愼勿輕速).’

빠르게 결정해 쉽게 두지 말고, 신중히 생각한 뒤 착점하라는 뜻의 바둑격언이다. 이의범 SG그룹 회장(52)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말이다. 그는 바둑에서 얻은 교훈을 밑거름 삼아 사업을 시작했고, 연매출 1조2000억원 규모의 SG그룹을 일궈냈다.

이 회장은 아마 5단 실력을 갖추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헌책방에서 ‘영원한 기성(碁聖)’이라 불린 우칭위안(1914~2014년)의 일대기를 읽고 바둑의 매력에 빠졌다. 우칭위안은 1930년대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다. 중학생 이의범은 그가 남긴 바둑 기보를 이해하고 싶어 바둑 정석 책을 잡히는 대로 읽고 외었다. 그렇게 바둑과 인연을 맺은 그는 현재 국민생활체육 전국바둑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SG배 페어바둑 최강전과 BASSO배 직장인 바둑대회를 7년째 후원하고, 여자바둑리그에선 SG골프팀(박지은 루이나이웨이 9단, 송혜령 강다정 초단)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바둑에 몰입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82학번인 그는 열혈 운동권 출신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대학 졸업 후 한국통신(현 KT)에서 자본주의와 기업을 경험한 그는 1년6개월 뒤 회사를 나와 창업했다. 바둑판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집을 내기 시작했다. 1991년 생활정보지 ‘가로수’를 발행했다. 가로수는 1990년대 중반 700여개로 늘어난 정보지 홍수에서 살아남았다. 이 회장은 2000년 가로수닷컴을 상장시켰다.

이후 GM대우(현 한국GM)의 시트를 생산하는 KM&I, 충남방적, 신성건설을 인수합병(M&A)하며 큰 집을 짓고 대마(大馬)를 형성했다. 인수 당시 이들 기업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회장이 인수 의사를 밝혔을 때 반대 목소리를 높인 임원이 많았다. 특히 강성노조가 버티고 있던 KM&I가 그랬다. 이 회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참고 기다리며 수를 읽었다. KM&I는 GM대우에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었다. 납품가를 정상화하면 승산이 있었다. GM대우 측에서도 대체 업체를 찾기 힘든 1차 협력사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밖으로 GM대우와 협상하고 안으로 노조를 설득했다. 현재 KM&I는 SG그룹의 알짜 회사다.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해온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SG골프를 설립했다. 80타대 초반의 골프 실력을 갖춘 이 회장이 우연히 스크린골프를 접한 뒤였다. 이 사업에 매력을 느낀 그는 1991년 가로수 이후 20년 만에 회사를 창업했다. 스크린골프 시장에 백돌을 놓은 것이다. 골프존이 일찍부터 흑돌을 잡고 집도 많이 낸 바둑판이었다. 골프존의 시장 점유율은 75%에 달한다. 이 회장은 한국보다 훨씬 방대한 해외 시장을 보고 있다. 그는 “기술 경쟁력만 갖춘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중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미국 등에 매장을 내 시장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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