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태윤 기자 ]
불황에다 기업환경 변화로 2016년 취업 시장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수주절벽에 처한 조선업종에선 채용절벽이 발생했고, 대기업은 전반적으로 공채 인원을 대폭 줄였다. 핀테크(금융+기술)와 모바일뱅킹 확산으로 은행들도 매년 두 차례 해오던 채용을 하반기 1회로 줄였다. 채용 인원을 줄이면서 대기업들은 직무 중심의 깐깐한 채용을 진행했다. 지원동기 일색의 자기소개서 항목은 각사에 꼭 필요한 인재 채용을 위한 질문으로 바뀌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으면서 거세진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취업 시장에도 반영됐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은 취업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고,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올해 취업 시장 10대 뉴스를 정리했다.
(1) 공채 줄고 수시채용 늘어
지난봄 LG생활건강은 홍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분야 인재 채용 공고를 냈다. LG그룹 공채와 별도로 수시채용을 한 것이다. 수시채용은 LG생활건강뿐 아니라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도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매년 상·하반기 공채를 해온 대기업들은 악화된 경영환경으로 상반기 수시채용, 하반기 공채로 신입사원을 뽑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CJ 등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곤 상반기 공채를 하지 않았다. 한 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퇴직자 수를 감안해 신입채용 규모를 산정하는데 퇴직자가 적다보니 신입채용 규모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용 인원이 줄다보니 주요 기업들은 채용 규모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2) 시중은행 연 1회 채용으로 바뀌어
시중은행 가운데 올 상반기 대졸 공채를 한 은행은 신한은행이 유일했다. 하반기 공채에선 국민은행(240명), 우리은행(150명), 신한은행(180명), 기업은행(190명), KEB하나은행(150명), 농협은행(140명) 등 6개 은행이 1050명을 채용했다. 지난해보다 31% 적은 규모다. 모바일뱅킹 확산과 핀테크 도입에 따른 영향이다. 은행들은 포화된 국내 시장을 벗어나 동남아와 남미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와 핀테크에 대응할 정보기술(IT)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채용공고란에 아예 새로운 시장 진출 국가 언어를 명시하고, 이공계 인재를 우대하고 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전체 신규 채용의 30%를 IT 인재로 확충했다.
(3) 깐깐해진 자기소개서
신입 공채를 줄이면서 기업들의 자기소개서 항목은 ‘깐깐하게’ 변했다. 국민은행은 “당신에게 하루(1일)의 자유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코오롱은 지원자에게 평가를 맡겼다. “외향성·호기심·배려심·정서적 안정성·성실성…이 단어에 대해 당신의 성격을 점수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현대글로비스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아이디어’를 지원자에게 구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는 입사 후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뒤 어떤 선택을 할지 자소서에서 물었다. 과거 자소서 문항이 성장 배경, 가족사항, 성격 등 지원자 개인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 자소서는 지원자의 경험과 가치관을 묻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4) 이색 채용 설명회 늘어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한 기업의 인재 채용 마케팅도 다양해졌다.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사옥초청 채용설명회가 주목받았다. 현대건설은 회사 모델하우스로 지원자를 초청해 선배와 인사팀 직원들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도록 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서울 테헤란로 사옥을 구직자에게 처음 공개했고, GS숍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취준생 초청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채용설명회 참가자 전원에게 서류전형 시 우대 혜택을 주기도 했다. 지방 대학생을 위한 온라인 채용설명회도 인기를 끌었다. CJ와 두산중공업이 지난해 하반기 공채 때 선보인 뒤 올 상반기 이랜드리테일도 도입했다.
(5) 직무 중심 채용 방식
기업의 채용 방식도 다양해졌다. 현대모비스는 SW탤런트와 세컨드 챌린지를 통해 SW전문인재와 경력자들의 재도전 기회를 제공했다. SK는 글로벌인재 확보를 위해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휴스턴에서 필기시험을 처음 치렀다. LG그룹은 구직자에게 채용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12개 계열사가 함께 전국 15개 대학을 순회하며 채용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롯데는 면접관 인증제를 통해 면접관을 선발 과정부터 엄격하게 교육해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포스코는 융복합형 인재 확보를 위해 올해부터 전공 제한 없이 계열별(이공계, 인문사회계)로 모집했다.
(6) 채용에 영향 미친 김영란법
KT는 올 하반기 채용에서 주말 토, 일요일 면접을 시행했다. 김영란법으로 수업을 비울 수 없는 구직자를 위한 배려다. 현대카드는 구직자 편의를 위해 야간면접을 도입하고 면접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까지 1박2일 합숙면접을 하던 방식을 바꿔 하루 면접으로 단축했다. 면접 일정 조정뿐 아니라 은행권을 비롯한 일부 기업은 김영란법 취지에 맞춰 입사일을 늦췄다. 우리은행은 입사일을 지난해보다 한 달 늦춘 12월12일로 바꿨다. 기업·신한은행도 12월12일로 입사일을 조정했으며,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12월19일로 미뤘다. 당초 11월1일로 입사일을 공지한 NS홈쇼핑은 내년 1월 초로 늦췄다.
(7) 면접 복장 자율화 바람
기업들의 탈정장화 바람은 입사면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한은행은 보수적 이미지를 벗고 이번 하반기 공채 때 자율면접 복장으로 바꿨다. 은행 측은 면접 안내 메일을 통해 ‘미용실 가지 마세요, 불필요한 돈 쓰지 마세요, 정장 입고 오지 마세요, 평소 모습이 보고 싶어요’란 메시지를 보냈다. 자율 복장의 취지가 알려지면서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면접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통신사인 SK텔레콤, LG유플러스도 면접 때 자율복장을 허용하고 있다. 자율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넥슨코리아, 엔씨소프트 등 게임회사들은 일찍부터 면접 자율 복장을 도입했다.
(8) 입사시험 단골은‘4차 산업혁명’
‘4차산업 혁명이 가져올 변화와 도전에 대해 논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설명하시오’(한국은행)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의 4차 산업혁명 예문 제시-핀테크 발전과 금융산업의 발전방향에 대해 서술하시오’(산업은행) ‘4차산업혁명으로 은행에 온 기회와 위험 요인은 무엇이고 대응방안은’(기업은행).
올해 치러진 주요 기업의 입사시험 문제다. 올해 주제는 세계적으로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이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삼성은 삼성직무적성검사(GSAT)에서 바이오프로세서, 인포테인먼트, 증강현실, 5세대 통신 등 첨단기술 관련 지식을 묻기도 했다.
(9) 막힌 국내 취업에 일본 취업 열풍
올해는 구직자들이 일본 기업으로 눈을 돌린 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외국인 고용상황 신고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일본에서 고용된 한국인 수는 4만1461명으로 2014년 10월 말(3만7262명)보다 약 11.3% 증가했다. 2013년 10월 기준 일본 기업에 고용된 한국인이 3만41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최근 일본 취업 한국인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야마시다 히로키 일본 마이나비 한국지사장은 “한국의 20대 취업준비생들은 경험과 스펙이 뛰어나고 다른 나라 학생보다 준비가 잘 돼 있어 일본 기업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10) 부장인턴, 티슈인턴, 금턴 …‘고달픈 20대’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부장인턴’ ‘티슈인턴’ ‘호모인턴스’ ‘금턴’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다. 몇 년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이 직장 저 직장에 다니다 보니 실력이 부장급이 됐다고 붙여진 이름이 ‘부장인턴’이다. 정규직 채용이 안 돼 휴지처럼 버려졌다는 의미의 ‘티슈인턴’, 인턴만 반복하고 입사가 안 되는 ‘호모인턴스’, ‘빽’이 없으면 갈 수 없다는 알짜인턴을 일컫는 ‘금턴’ 등 고달픈 20대 젊은이의 자화상을 반영한 신조어도 올 한 해를 장식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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