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청와대 풍수

입력 2016-12-18 17:54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일대 혼란에 빠지면서 ‘청와대 흉지(凶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복궁과 경복궁의 옛 후원 자리에 있는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안 좋은 터이기 때문에 국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권력자들의 말로가 불운했다는 것이다.

흉지론이 시작된 것은 600여년 전의 일이다. 이성계는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고 이듬해 경복궁을 창건한 후 ‘왕자의 난’이라는 형제간의 골육상잔을 겪었고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나중에 태종 이방원은 궁궐터를 잘못 잡았다며 그 이유로 “바위산이 험하고, 명당수가 없다(石山之險, 明堂水絶)”고 지적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은 1867년 중건할 때까지 버려진 채 있었고 고종과 순종 때도 경복궁 대신 덕수궁 창덕궁 등을 정궁으로 썼다.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경무대나 청와대에 들어갔던 역대 대통령들이 결국 하야, 시해, 자식 구속, 본인 구속 등 최악의 말년을 보내게 된 것도 터가 나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터 자체는 길지요, 명당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조선이 500년 왕조를 유지한 것이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성장을 이룬 것 등은 국운융성의 증거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풍수도참을 중시했던 고려 때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연흥전이라는 소궁궐을 지었고 경복궁도 같은 곳에 세우려 했으나 장소가 좁아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조성했다고 한다.

1990년 청와대 신축 공사 중에 관저 뒤 암벽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새겨진 글자가 발견된 적이 있다. 300~4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예부터 이곳이 명당으로 꼽혔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풍수는 기본적으로는 동기감응(同氣感應)과 동형감응(同形感應)설에 기초해 있다. 조상의 무덤을 좋은 곳에 쓰면 조상과 자손이 유전자적 인연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고, 또 생산을 상징하는 여성의 음부를 닮은 곳에 묘를 잡으면 자손이 더욱 잘될 것이란 식의 믿음이다. 과학적 기반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맹자’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란 말이 있다. 하늘의 때라는 것이 땅의 유리함만 못하고 땅의 유리함도 사람들의 화합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본관에서 비서관들이 근무하는 비서동까지 거리가 500m나 되고, 급한 보고는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이쯤되면 풍수가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 설계의 문제로 봐야 할 것 같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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