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시집 <사랑의 이정표> 출간
법(法)과 시(詩)는 언뜻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법은 ‘이성의 언어’로 만들어진 규칙인 반면 시는 ‘감성의 언어’로 쌓은 예술이다. 하지만 법학을 공부하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법학자이자 시인인 조성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조성민 교수다. 벌써 세 번째 시집 『사랑의 이정표』를 냈다.
조 교수는 15일 “법학을 공부하면서 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며 “사고의 틀이 법이라는 딱딱한 언어 아래 갇히게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1990년 독일 괴팅겔에 연구교수로 떠난 게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고향과 가족, 조국이 그리웠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마음에 너울댈 때마다 메모장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메모가 쌓이고 쌓여 100여장이 됐다.
그는 자연스레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어둠이 찾아들면, 바람도 잔잔히 다가와…’로 시작하는 그의 시 ‘하룻밤의 외출’(아래 전문 참조)도 노르웨이로 가는 뱃머리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다.
그는 자신의 시를 ‘쉬운 시’라고 했다. 읽는 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면 시는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런 생각은 법을 대할 때의 태도로 이어졌다.
조 교수는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문장이 너무 길고 단어도 불필요하게 어려워 일반인은 커녕 로스쿨 학생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법을 일반인이 다가가기 쉽게 만드는 것이 그가 교육자이자 법학자로서 꿈꾸는 목표다. 그는 “글을 어렵게 쓰지말고 제대로 이해하고 흡수한 뒤 쉬운 문장으로 옮기라고 로스쿨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법학 강의를 하는 도중에도 제자들에게 시를 읊어준다.
조 교수의 시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법이 엿보인다. 그는 <공명정대한 법>이란 시에서 ‘법은 부자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아니다’라며 평소 법학에 관한 철학을 담았다.
조 교수는 “시는 살아가는 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삶의 원동력”이라며 “최순실 사태로 사람들이 울분과 자괴감에 빠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시가 가장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일상에 치이더라도 자신은 물론 주변의 소중한 지인들을 위해서 여유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다는 뜻”이라면서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어야 남들을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난 4월 꾸려진 문인단체 ‘아태문인협회’의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아태문인협회는 기존의 문인협회에서 글을 쓸 기회가 없는 문인들에게 매년 두번씩 글을 내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친목을 다지는 단체다. 조 교수는 “뜻이 맞는 문인들이 모여 문학공부를 하며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제공하고 싶다”며 “앞으로 소설가·평론가·시인들이 모여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문인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배정철/마지혜 기자 bjc@hankyung.com
하룻밤의 외출
-조성민
망망대해에 어둠이 찾아들면
바람도 잔잔히 다가와
내 손을 잡는다
낮게 뜬 보름달
침묵으로 일관하는
발트해의 밤
깊어만 가는데
시간에 떠밀려온
저 달 속에
미소 짓는 그대가 있어
오늘 밤
무거운 삶 내려놓고
가슴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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