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영 기자 ]
증권가(街)가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유럽 중앙은행(ECB) 총재가 보낸 훈풍에 온기를 느끼고 있다. 다음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산타 랠리' 탑승 전 마지막 고비로 꼽혔다.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한 국회 표결 이후 주식시장 내 정치적 불확실성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 ECB, QE 연장 대신 규모 줄여…드라기 "테이퍼링 아니다"
간밤 ECB는 12월 통화정책회의에서 현행 금리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2017년 3월로 종료될 예정이던 양적완화(QE) 기간은 12월까지 9개월 연장됐다. 당초 시장의 컨센서스(기대 수준)는 6개월 연장 결정이었다.
ECB는 다만 내년 3월을 기점으로 양적완화 규모를 매달 기존 800억 유로에서 600억 유로로 줄였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사실상 테이퍼링(출구전략)의 시작으로 해석했다.
드라기 총재는 그러자 "채권 매입 규모 축소는 테이퍼링이 아니다"라며 "언제든지 다시 규모를 800억 유로로 늘릴 수 있는 데다 QE 프로그램 종료 시기 역시 '12월 또는 필요시 그 이후'"라고 강조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어 "점진적인 테이퍼링조차 논의한 적 없다"라면서 일각의 테이퍼링 우려를 단번에 잠재웠다.
그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위험은 대체로 사라졌지만 내년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슈 등이 중장기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유럽 및 미국 증시 동반 상승…"합리적인 절충안"
ECB 회의 전후로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올랐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600 지수가 전날보다 1.2% 뛰었다. 이는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미국 뉴욕 증시도 QE 연장 소식과 국제유가 상승에 힘입어 또 다시 사상 최고치를 썼다.
특히 ECB 회의 이후 남유럽 은행주(株)가 주가 상승을 주도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유로화가 잠시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지만, 드라기 총재의 발언 이후 1.06달러까지 하락하며 약세로 돌아섰다. 독일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한때 0.46%까지 뛴 이후 0.38%로 상승폭을 줄여놨다.
전병하 이베스트투자증권 채권담당 연구원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과 일본 중앙은행(BOJ)이 가지는 양적완화 지속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하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ECB가 돌연 QE 프로그램을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이번에 규모를 줄이는 대신 기간을 연장한 정책결정은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ECB의 정책 방향성이 테이퍼링을 장기 목표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유로존 물가가 빠르게 상승하는 가운데 경제지표들이 호전을 보이면 내년 6월 또는 9월 정책회의에서 보다 빠른 시점에 QE 규모를 더 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은택 SK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도 "ECB 회의 이후 2년 이하 채권매입, -0.4% 이하 채권매입 허용, ECB 담보물에 현금추가 등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받아들였다"라고 판단했다.
앞으로 국내 증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번질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ECB 이후 장기금리가 오르고 단기금리가 하락했는데 이는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미국 금리가 움직이지 않은 것에는 실망할 수 있지만, 기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탄탄한데 실질금리가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증시 랠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12월의 마지막 고비 'FOMC'…"NO! 안도랠리 신호탄"
이른바 '산타 랠리'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다음 주 14~15일(한국시간)에 열릴 미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회의(FOMC)가 그것이다.
Fed가 기준금리를 올릴 확률은 90~100%에 달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완화적 코멘트'로 인해 금융시장 내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대훈 SK증권 글로벌 마켓담당 연구원은 "FOMC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성명서에 완화적인 문구가 삽입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에 따라 국내를 포함한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시황담당 연구원의 경우 12월 금리인상을 연말 안도랠리로 가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이번 Fed의 금리인상은 중시 내 후폭풍보다 정책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안도감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라며 "명목금리 상승에 따른 파장은 이미 금융시장이 상당부분 반영한 데다 잠재성장률 등을 감안하면 Fed의 완화적 통화정책 환경이 달라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나아가 "미국의 경제지표 호조, 고용 및 실업률 지표, 트럼프발(發) 리플레이션 기대 강화 등을 고려해 보면 금리인상 변수는 이제 가변적인 단계를 지나 확정적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시 '불확실성 해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 증시의 수급 여건이 좋아질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 심화로 국정이 마비된 상황에서 탄핵안 가결 시 불확실성 해소 기대감이 커질 수 있지만, 반대로 부결될 경우엔 국정혼란이 이어져 향후 증시 움직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영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탄핵안 가결 시 단기적으로 증시 반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탄핵표결 이후 연말 소비심리 회복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 만큼 중국과 관계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유겸 LIG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고 총리가 권한을 대행하게 되는데 지금처럼 대통령이 실제 국정을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오히려 경제적(금융시장)으로 낫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탄핵 이후 증시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대훈 연구원은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 있어 정치적 불확실성은 지속될 수 있다"면서 "투자심리 위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 2004년 탄핵정국 시 증시 거래대금과 외국인의 자금 유입이 부진했었다"며 "이달 말까지는 주가 변동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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