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제의 근원은 무능한 대학에 있어
정체성 맞는 스스로의 미래를 제시하고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을 능력 보여줘야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나날이 더해가고 있는 와중에, 이 분노의 큰 부분이 대학 입시와 학사 부정에서 나왔다는 것에 대학교수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에 더해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부정하게 작성하고 해당 연구비 및 자문료 부정 사용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한 교수는 학자로서 잘못이 있을 수 있으나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변론을 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연구, 학사와 관련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니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사회의 스승이자 촛불이 아니라 기득권과 갑질의 한 상징물이자 개혁의 대상이 됐다. 이런 일들을 안에서 바라보면, “과연 우리의 대학들은 스스로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을 능력이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연구력 측면에서도 대학이 내재적으로 가져야 할 변혁의 동력에 의문이 있다. 국내 대학들이 세계 대학평가에서 나날이 좋은 등수를 받아 서울대, 포스텍, KAIST 등이 100위권에 포진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순위 자체도 아직 내놓고 얘기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우리 대학의 과학연구 경쟁력은 실상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세계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미국, 영국의 명문대학들과는 비교하기 어렵고, 베이징대와 칭화대로 대표되는 중국 대학들보다 많이 뒤처져 있다. 네이처지가 올해와 작년에 발표한 과학연구에서의 각 대학 성과 비교를 보면 국내 최고 대학들은 일본 대학 5위권인 나고야대와 비슷하거나 낮은 정도다. 최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이 외국 석학들에게 받은 평가에서도 역시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창의적인 성과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과학은 본래 창의적인 것인데, 창의적인 성과가 부족하다는 얘기는 그냥 아직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서울대, 포스텍, KAIST를 제외한 국내 대부분 대학이 논문당 얼마씩 인센티브를 교수들에게 줘 논문을 많이 내도록 독려하고, 이를 통해 대외적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 서글픈 한 단면이다.
이런 상태를 지적하면 당연히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뭐냐고 물을 것인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 같은 답을 가지고 나온다. 정부의 투자가 부족하고, 정책이 잘못돼 있으며, 인력이 부족하고, 중등교육이 잘못돼 있다고 한다. 들으나 마나 한 내용들이다. 필자는 과연 정부가 투자를 하면 이를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것인지, 정부에 어떤 정책을 주문할 것인지, 인재들이 어떻게 과학계에 들어오게 할 것인지, 중등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 대답을 대학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의 문제이기 이전에 대학 자체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해서 다시 묻는다. 과연 대학은 스스로를 구제할 능력이 있는 주체인가. 개혁 대상인가 아니면 주체인가. 대학은 스스로의 미래가 5년마다 바뀌는 정부 정책에 이리저리 휘둘리도록 방치할 것인가. 대학은 대학의 도덕적 수준과 교육, 연구에서의 전문성을 높일 구체적인 개혁 밑그림을 스스로 가져야 할 것이다. 서울대는 서울대의 미래를 스스로 제시해야 하고, 포스텍과 KAIST는 한국 연구중심대학의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
교육의 최정점이고 국가의 과학연구를 견인하면서 여전히 사회 전체 지혜의 정점에 서 있는 대학이 정부와 사회의 개혁 대상으로 전략해서는 미래가 어둡다고밖에 할 수 없다. 우리 대학 문제의 근원은 대학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일하고 무능하며 비전이 없는 대학 내부에 있을 것이다. 이 글이 열악한 지원 속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대학과 연구소의 학자들을 모욕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다만 대학이 어두운 사회를 비추는 촛불로 다시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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