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농업사 전문가가 역주한 중국 남송대(南宋代) 농서
국가 권농책 문제점 비판, 농민 위한 농업경영 제창한 최초의‘농민에 의한’농서
중국 당송시대의 농업의 변화상을 잘 표현한 대표적인 농서인 『진부농서』가 역주서로 출판됐다. 서술방식이 전고(典故)가 많고 난해해 일본을 제외하고 중국에서도 아직 완역되지 못했다.이 책은 그동안 일본과 중국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여 역주작업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의 농서가 농업기술뿐만 아니라 농업경영까지 제시하였다는 점에 특색을 지닌다.
부산대학교는 중국농업사를 전공하는 사학과 최덕경 교수가 지난달 25일 국내 최초로 『진부농서 역주』를 출간했다고 5일 밝혔다.
『진부농서陳?農書』는 1149년에 진부에 의해 찬술된 농서로서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송대 정치경제의 중심이 강남으로 이동하고 농업환경이 바뀌면서 기존의 화북적(華北的) 한전농법이 강남의 수전농법과 결합되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 준다. 또 이 책은 기존의 주곡중심의 농업에서 농업과 양잠이라는 새로운 농업의 틀을 통해 상업적 농업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저자인 진부는 비록 관직을 역임하지는 않았지만, 폭넓은 경전지식을 갖춘 독서인이면서 직접 농사를 지어 농민의 고충을 이해하고, 농민과 농업이 국가통치의 요체라는 사실을 웅변한 실천가였다. 그는 ?자서(自序)?에서 농사일은 구습에 따라 대충 처리할 대상이 아니므로 일정한 규칙을 세워 일의 전후와 완급을 조절할 것을 강조했다. 성군이 되기 위해서 농민이 즐겁게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고, 관료들은 실적이나 미사여구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농업의 본질을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부는 이 『농서』가 단순히 자신의 “이름이나 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쓴 것”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이 이 책을 서로 배우기를 염원했다. 이런 고집 때문에 진부는 나이가 7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남송 소흥(紹興)19년(1149)에 처음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진부농서』의 분량은 다른 농서에 비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내용이 알차며, 무엇보다 기존의 농서처럼 작물이나 수목의 재배방식을 단순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농업경영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농서와는 차이가 있다. 게다가 잠상(蠶桑)과 소의 역할을 중시하여 농상(農桑)을 중국농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도록 한 점 역시 당대(唐代)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상을 보여 주고 있다.
잠상과 우경(牛耕)의 중요성과 함께 『진부농서』가 지닌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토지의 위치와 환경의 변화에 따른 토지이용과 재배관리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변화된 농업환경 속에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산전(山田)을 개간하고 비료를 개발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주목할 것이 인분뇨(人糞尿)의 이용이다. 주곡작물에 인분뇨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진부농서』에서 비롯된다. 인분과 퇴비를 수집하기 위해 분옥(糞屋)을 건설하고, 이를 통해 지력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오랜 휴한의 한계를 극복했다. 강바닥에서 진흙을 채취해 제조한 토분(土糞), 화분(火糞)이나 외부에서 도입한 깻묵류 등이 토온(土溫)이 낮은 강남지역의 단점을 극복하는 데 이용됐다는 점은 매우 주목된다.
『진부농서』의 이 같은 기술체계는 그대로 원명元明시대로 연결되어 농업의 양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이렇게 성숙된 농상체제와 남방의 수전농업 기술은 인접국가로 전파되면서 조선의 농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역주본은 가능한 진부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직역을 했다. 주지하듯 농서의 역주작업은 내용 번역 못지않게 그 속에 담긴 배경이나 사상 및 다양한 농업기술과 생산수단을 제시하는 주석이 중요하다. 특정국가의 전통농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풍토와 환경을 기반으로 한 농업기술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역주를 위해서는 농업사 분야의 많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최 교수는 중국 고대 농업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중국 고대농업사 연구』, 『중국고대 산림보호와 생태환경사 연구』를 출간했다. 이달 중『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아울러 역주작업으로는 『농상집요 역주』와 『보농서 역주』를 편찬했다. 그 외 몇 권의 농서는 이미 초벌번역이 끝난 상태다. 농업기술과 생태농업에 관련하여 적지 않은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후에도 중국 농서를 지속적으로 번역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책의 역주작업은 필자가 12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중국 농업관련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농서연구회’ 활동 결과물 중의 하나로서, 현장 확인을 위해 수시로 답사하기도 한다.
전근대 사회에서의 농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었으며, 정치·사회·문화를 이해하는 원동력이었다. 전통시대의 농업, 농민, 농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젊은 친구들에게 농업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그림 자료도 삽입했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농학과 경제학 및 민속학 등의 교육 자료로 제공될 수 있다. 최근 농약, 화학비료 및 유전자조작에 의해 오염된 생산위주의 농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중심의 생태농업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각종 생활 쓰레기나 폐기물조차 자연으로 순환시켜 다시 농업의 자원으로 활용했던 지혜를 되돌아보고, 이러한 영향이 아시아 특유의 농업환경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점에서 본 역주서는 아시아 전근대 생태농업과 지속가능한 미래의 농업을 전망하는 교육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생태 유기농업에 의한 식량생산이 곧 인류의 미래와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가치임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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