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상승 선제대응 방안
금융위기 후 처음…"시장상황 따라 시기 결정"
산업은행, 최대 5000억 중소·중견기업 회사채 인수
300조원 육박 자영업자 부채도 집중 관리하기로
[ 이태명 / 안상미 / 이유정 기자 ]
정부가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채권금리 급등으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2008년 펀드 조성 이후 8년 만이다. 대출금리가 올라 서민·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 대비해 디딤돌대출 등 정책금융 상품도 재정비하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사진)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금리 상승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금리 상승 리스크 대응
국내외 시장금리는 지난달 미국 대통령선거 직후부터 요동쳤다. 국내 채권금리도 급등했다. 지난달 8일 1.41%이던 은행채(3개월물) 금리는 30일 1.61%로 뛰었다. 이 기간 국채 3년물과 10년물도 각각 29bp(1bp=0.01%포인트)와 44bp 상승했다.
채권금리 급등은 곧바로 국내 가계와 기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금융채에 연동된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달 말 연 3.3~4.8%로 9월 말에 비해 58bp 뛰었다. 기업대출 금리도 석 달 새 32bp가량 올랐다. 채권금리 상승으로 기업들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발행해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늘었다. 임 위원장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이달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년에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면 국내 금리 변동성도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재가동
금융위는 선제 대응 차원에서 회사채 발행 여건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금리 변동성이 커질 경우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재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이 펀드는 2008년 11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됐다.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되는 기업 채권을 모아 공공기관 보증을 통해 신용도를 보강한 뒤 펀드가 이를 되사는 구조다. 은행 증권회사 등 90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10조원 규모로 조성했으며, 이 가운데 5조원을 당시 회사채 은행채 등을 매입하는 데 썼다.
금융위는 채권금리가 급등하면 펀드 운용협약을 맺은 90개 금융회사와 함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임 위원장은 “재가동 시기는 시장 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겠다”며 “펀드 규모는 10조원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내년 1분기부터 산업은행을 통해 최대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도 인수하기로 했다. 대상은 금리 상승으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낮은 신용등급의 중소·중견기업이다. 또 자금난에 직면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대출보증을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신보는 약 40조원, 기보는 18조원의 보증을 지원했는데, 이를 더 늘리겠다는 얘기다.
◆자영업자 부채도 관리
금융위는 가계부채도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시장금리가 오를 경우 고정금리 정책상품인 디딤돌대출, 적격대출, 보금자리론 등으로 서민층 수요가 몰릴 것이란 판단에 따라 세 상품의 대출 조건, 자격 요건 등을 개편하기로 했다.
숨은 가계부채로 통하는 자영업자 부채도 집중 관리한다. 임 위원장은 “자영업자대출은 가계대출이나 신용대출처럼 분할 상환을 강제할 수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며 “(자영업자는) 사업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건데, 대출을 규제하면 사금융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금융위가 파악한 자영업자대출은 지난달 말 기준 289조원이다.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대출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태명/안상미/이유정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