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와 독서로 치유하는 '힐링族'
먹고 마시고 즐기는 '본능族'
촛불시위 주도하는 '행동族'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울화통을 터뜨리다 못해 허탈함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순실증’ 현상이다. 이 같은 집단 스트레스가 한달 넘게 이어지면서 순실증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감지되고 있다.
순실증을 이겨내는 방법은 개개인 성향에 따라 다르다. 문화생활로 심신을 달래는 ‘힐링족’,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 스트레스를 푸는 ‘본능족’,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일상에서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행동족’ 등 다양하다.
◆콘서트와 독서로 치유하는 ‘힐링족’
‘힐링족’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데 주력한다. 힐링 관련 업종은 순실증 반사 효과를 누리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뒤 힐링과 관련된 에세이나 인문학 서적 판매량은 눈에 띄게 늘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에세이 분야 서적은 최순실 사태 이후 전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유시민의 ‘어떻게 살것인가’ 김제동의 ‘그럴때 있으시죠’ 등이 인기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인문서적 ‘자존감 수업’도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책을 통해 위안을 얻는 고객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콘서트나 뮤지컬 등도 매진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3~24일 이뤄진 내년 4월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내한 콘서트 예매엔 4만5000장을 판매하는데 145만명이 몰렸다. 티켓은 온라인 예매사이트가 열리자마자 1분만에 전석 매진됐다. 뮤지컬 ‘팬텀’등도 전석 매진 상태다. 직장인 김원호(34)씨는 “그저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것보다 책을 읽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생각할 거리도 얻는게 낫다”고 말했다.
◆먹고 마시고 스트레스 푸는 ‘본능족’
원초적 스트레스 해소법에 기대는 ‘본능족’도 있다. 신림동 고시생 박모씨(25)는 술과 노래로 순실증을 극복하고 있다. 5급 행정공채를 준비 중인 그는 “최순실 사태와 합격자 발표 시기가 겹치면서 얼마 전까지 무기력증에 시달렸다”며 “석달 앞으로 다가온 1차 시험 때문에 토요일 시위에 참여하진 못하지만 친구들과 토요일마다 주점에서 뉴스를 보며 술을 마시거나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했다. 편의점업계에선 소주나 맥주 등 주류나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이 매출이 늘었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최씨 사태 이후 주류 판매량이 전년 동기간 대비 30% 가량 늘었다. 매운 음식 역시 전년 대비 19.8% 증가했다.
노래방, 오락실, 당구장 등도 ‘최순실 특수’를 누리고 있다. 노량진의 한 PC방 종업원은 “근래 매출이 거의 30% 늘었다”며 “특히 한동안 인기가 식었던 ‘서든어택’ 같은 일인칭슈팅(FPS) 게임을 즐기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림역 인근 당구장 주인 이모씨(51)는 “토요일 저녁이 가장 붐빈다”며 “촛불집회를 TV로 보면서 당구를 치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격이나 양궁 등 저격 스포츠도 인기다. 일일체험 어플 ‘프립’에 따르면 실탄사격이나 공기총사격, 양궁 등으로 구성된 ‘마음속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는 프립’ 기획전은 전달 대비 15% 가량 매출이 늘었다.
◆촛불집회 준비하는 ‘행동족’
토요일마다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미리 준비하면서 순실증을 떨쳐내는 ‘행동족’도 있다. 직장인 장진영씨(29)는 요즘 연설문 작성에 열심이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의 시민 자유발언 시간에 외칠 연설문이다. 장씨는 “한동안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 퇴근하면 집에만 있었는데 집회에 나가서 구호를 외치니 스트레스가 풀렸다”며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3분간 자유발언 때 청와대에 대고 한 마디 하고 싶어 연설문을 준비 중이다”고 했다.
일주일 간 집회에 가지고 나갈 피켓을 손수 준비하거나 시위 때 부를 노래를 만들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남은 우정 감방에서’ ‘탕 한그릇하시죠’ 등 시민들이 직접 만든 피켓들은 매회 시위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다. ‘트와이스’의 노래 ‘TT’를 개사한 ‘SS(순실)’이나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OST를 ‘나타나’를 개사한 ‘나가라’ 등도 시민들이 직접 만든 작품이다.
황정환/성수영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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