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 속한 국제연구팀, 네이처지 발표
유전병 환자 난자의 핵 건강한 여성의 난자에 이식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 정상으로 바꿔주는 효과
시험관 시술처럼 간단해 희귀질환 유전 방지 기대
[ 박근태 기자 ]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 공동 연구진이 어머니에게서 유래되는 희귀 유전병 대물림을 막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알아냈다. 시험관 아기 시술처럼 간단하고 윤리적인 방법이란 점에서 유전병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30일 강은주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줄기세포센터 연구원과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퇴행성 유전병인 리 증후군과 멜라스 증후군에 걸린 여성 난자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일반 여성의 미토콘드리아로 바꾸는 방법을 이용해 건강한 배아줄기세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세포 내 에너지 공장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엄마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사람 얼굴이나 체형, 건강 같은 유전 형질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결함이 생기면 퇴행성 희귀 질환이나 당뇨, 심장 질환, 청력 손실과 같은 질병을 유발한다. 과학계에서는 세계 5000명당 한 명 정도가 미토콘드리아 DNA 결함으로 희귀 질환을 앓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 DNA 결함 때문에 생기는 퇴행성 유전병인 리 증후군과 멜라스 증후군을 앓는 여성 3명에게서 난자 11개 를 채취했다. 그리고 난자에서 핵만 빼낸 뒤 건강한 여성 11명에게서 얻은 난자 36개에 넣었다.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를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로 바꾼 것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난자를 체외 수정시켜 신체 다양한 부분으로 분화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18개를 얻었다.
연구진은 이들 줄기세포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3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갖게 된 줄기세포에서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환자 난자에서 핵을 빼내는 과정에서 딸려 온 0.1%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가 건강한 난자에서 다시 증식하며 나타난 현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돌연변이가 나타난 난자는 건강한 미토콘드리아의 증식 속도가 느려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에 잠식당했다. 이는 지난 9월 건강한 아빠와 미토콘드리아 유전병을 앓는 엄마, 건강한 난자 공여자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이른바 ‘세 부모 아기’에서도 나타난 문제다.
강 연구원은 “이런 문제를 없애려면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보다 빠른 증식 속도를 가진 건강한 난자 공여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해 ‘세 부모 아기’에서도 나타나는 유전병을 근절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또 DNA 자체를 편집하는 유전자 가위보다 윤리적으로 진일보한 기술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다만 이 방법은 이미 병을 앓고 있는 성인에게는 적용하지 못한다. 강 연구원은 “엄마의 유전병을 갖지 않은 아기를 태어나게 하는 방식으로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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