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고채 매입 이후 '통안증권 발행 축소'
두 번째 안정조치 시행…시장금리 일제히 하락
"금리급등 속도 늦춰도 흐름 바꾸긴 힘들어"
시장에선 회의론 만만찮아
[ 김유미/하헌형/심성미 기자 ]
트럼프 쇼크 이후 채권시장 불안이 걷히지 않자 한국은행이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1일 국고채 매입에 나선 데 이어 28일엔 통화안정증권 발행액을 줄였다. 1주일 새 두 차례나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이다. 재정·금융당국이 쓸 카드가 마땅치 않은 가운데 통화당국 수장인 이주열 한은 총재(사진)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은의 발 빠른 대응에 채권금리 상승세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시장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꾸긴 어렵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치솟는 금리를 잡지 못하면 금융시장 불안, 가계빚 문제까지 터질 수도 있다. 이 총재의 추가 조치가 주목받고 있다.
◆1주일 새 2차 방어 나선 이주열
28일 한은은 통안증권을 원래 계획했던 1조원 규모에서 3000억원으로 줄여서 발행했다. 지난 25일 채권금리가 또 급등세로 마감하자 한은은 이 같은 발행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한은이 통안증권 발행을 줄이면 채권시장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채권값이 오르는(금리가 내리는) 효과가 있다.
이 같은 조치에 힘입어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4.7bp(1bp=0.01%포인트) 낮은 1.764%, 10년물은 3.1bp 하락한 2.513%로 마감했다.
한은은 지난 21일에도 국고채 1조2700억원어치를 직접 매입하며 금리 진정을 유도했다.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국고채를 사들인 것은 2008년 11월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국고채 3년물 금리가 8거래일 만에 하락하며 약발이 먹혀드는 듯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자금 유출에 당국 긴장
최근 금리 상승은 트럼프 쇼크가 발단이 됐다. 트럼프발 인플레 가능성에 다음달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인상으로 선제 대응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글로벌 채권금리는 동반 상승했다. 외국인은 한국 시장에서도 국채를 팔아치우며 채권금리 급등을 주도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1조489억원어치 원화 채권을 순매도(매수-매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 잔액은 21일 89조6882억원으로 3년9개월 만에 90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3분기 단기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템플턴펀드가 미국의 금리인상을 우려해 1조원이 넘는 채권을 순매도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선 스위스, 중국의 중앙은행들까지 가세해 장기 채권 매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국의 위기감은 높다. 시중금리가 더 오르면 가계부채 부담이 커지며 전반적인 금융 불안으로 도질 가능성도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개혁추진위원회에 참석해 “시중금리 상승이 지속될 우려가 있다”며 “필요하면 단호하게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은 추가 조치 나올까
기획재정부도 다음달 국고채 발행 규모를 1조4500억원가량 줄이기로 했다. 일부에선 국민연금으로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도 제안했지만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8일 “국민연금이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는 이제 상승기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정책까지 가시화하면 한국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정부가 대규모 재정 완화로 대처하긴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한은 대처가 주목되는 배경이다. 한은은 다음달 통안증권 발행도 축소하기로 했다.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한은은 공개시장운영 대상 증권에 은행채와 일부 특수채를 포함하고, 채권시장 안정펀드에 출자한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등 추가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김유미/하헌형/심성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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