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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액심사에선 정부가 갑
지역구 예산 등 '밀당용' 활용
[ 유승호 기자 ] 내년도 정부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이 임박했지만 아직 사용처와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예산이 적지 않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 이어 삭감 대상 예산을 심사하는 감액소위원회까지 마쳤지만 1조2000억원이 ‘보류’ 예산으로 남아 있다. 포항~삼척 철도 건설(5069억원), 대구순환고속도로 건설(1000억원), 새마을운동 세계화(35억원) 등 예산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보류 예산이 생긴 것은 표면적으로는 여야 이견 때문이다. 보류 예산을 살펴보면 야당이 여당 실세 지역구 관련 예산이라고 주장하거나 지역 불균형 논란을 일으킨 것이 많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보류 예산으로 남겨놓고 예결위 여야 간사 간 협의에 맡긴다.
하지만 숨은 이유도 있다고 의원들은 설명한다. 정부를 상대로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일정 규모 예산을 보류해 둔다는 것이다.
예산안 심사엔 여야 의원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관계자들도 참석해 정부 입장을 설명한다. 감액 심사 땐 국회의원이 갑, 정부가 을이 된다. 예산을 삭감하려는 국회의원들 앞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한 푼이라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증액 심사에 들어가면 갑을이 뒤바뀐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늘리려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증가시킬 수 없다’는 헌법 57조에 따른 것이다.
지역구 민원 예산을 집어넣으려는 국회의원들은 정부 관계자에게 ‘사정’해야 한다. 이때 보류 예산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를 상대로 보류 예산을 깎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증액을 요구하는 것이다.
예결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액 심사가 끝나면 기재부 공무원들이 국회의원 전화도 잘 안 받을 만큼 갑을 관계가 바뀐다”며 “협상력을 높이려면 보류 예산을 가급적 많이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