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공략하기 (21) - '르' 불규칙, '러' 불규칙도 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삼형제 가수 산울림이 1980낸대 초 부른 가요 ‘청춘’의 도입부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나이 듦을 구슬픈 목소리로 잔잔하게 불러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노랫말에 나오는 ‘푸르른’은 아쉽게도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기본형이 ‘푸르다’이므로 이 말의 관형형은 ‘푸른’만 인정됐었다. 2015년까지는 그랬다. 언중이 ‘푸르르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그 나름대로 쓰임새가 인정돼 국립국어원은 이를 별도의 표준어로 채택했다. 2015년 12월 ‘푸르르다’는 ‘푸르다’를 강조해 이르는 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랐다. 정식 단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푸르른~’을 마음껏 써도 된다.
지난 호에서 잠그다, 치르다, 담그다, 예쁘다 등 ‘으’ 탈락(‘으’ 불규칙) 용언의 활용 형태를 살펴봤다. 이들은 모두 ‘잠가, 치러, 담가, 예뻐’ 등 어간의 ‘으’가 모음어미로 연결될 때 탈락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그런데 ‘푸르다’ 역시 ‘푸르고, 푸르니, 푸르지’ 하다가 모음어미가 연결되면 ‘푸르러, 푸르렀다’ 식으로 어간의 일부 형태가 바뀐다. 이때 주의할 것은 ‘푸르다’의 경우는 ‘으’ 탈락 용언과 조금 다른 형태로 바뀐다는 점이다. 모음어미가 연결될 때 ‘러’ 발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를 따로 ‘러’ 불규칙이라고 한다. ‘러’ 불규칙 용언에는 이 외에도 ‘이르다(至ㆍ이르러/이르렀다), 노르다(노르러/노르렀다), 누르다(누르러/누르렀다)’ 따위가 있다. 한글 맞춤법에서는 이를 “어간의 끝음절 ‘르’ 뒤에 오는 어미 ‘-어’가 ‘-러’로 바뀔 적에는 바뀐 대로 적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제18항 세부항목 8.)
비슷한 활용인 것 같지만 또 다른 게 ‘르’ 불규칙이다. 가령 ‘(계단을) 오르다’란 말을 보자. 이 말은 ‘오르고, 오르게, 오르지’처럼 규칙적으로 활용하다가 ‘올라, 올랐다’ 식으로 모음어미와 연결될 때 다른 형태를 띤다. 어간에 받침 ‘ㄹ’이 붙고 어미 ‘-아/-어’가 ‘-라/-러’로 바뀐다. ‘가르다, 가파르다, 거르다, 구르다, 나르다, 다르다, 마르다, (내기를)무르다, 바르다, 부르다, 벼르다, 빠르다, 사르다, 조르다, 지르다, 추스르다, 흐르다’ 등은 모두 ‘르’ 불규칙 용언이다. 이들을 굳이 외울 필요는 없다. 실제 발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별하는 게 요령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갈라, 날라, 달라, 발라…’ 식으로 발음할 것이다. 즉 ‘ㄹㄹ’로 소리 나는 것을 찾으면 된다.
이 중 ‘가파르다’는 자칫 틀리기 쉬우니 따로 그 활용례를 알아두는 게 좋다. “산 중턱쯤 오르니 산세가 갑자기 가파라졌다.”처럼 많이 쓴다. 이때 ‘가파라졌다’는 ‘가팔라졌다’의 오기이다. 또 하나, ‘르’ 불규칙 용언이 ‘내기를 물렀다, 마음을 추슬러~, 끼니를 걸러~’처럼 활용하다 보니 자칫 기본형을 ‘물르다, 추슬르다, 걸르다’ 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2017학년도 수능 영어에서 만난 단어들
원래는 지난주에 이어 ‘법정에서 만난 영어 표현들’을 연재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로 오늘은 이번 수능에서 나온 단어들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면 관계상 그 수많은 단어를 모두 다룰 수는 없고, 오늘도 역시 막상 독해 지문에서 만나면 해석이 안 되는,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는 단어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20번에서 account가 ‘계좌’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이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4번에서는 account for(차지하다)라는 표현으로, 그리고 38번에서는 account가 ‘설 ?rsquo;이란 뜻으로 나온답니다. 참고로 account for에 ‘설명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역시 반드시 단어는 예문 속에서만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또, 29번에서는 멋진 표현이 세 개나 나오는데, 첫째로 be lost on (somebody)이라는 표현을 만나 보겠습니다. 이 표현은 ‘~에게 이해되지 않다’의 뜻으로, 본문에서는 on 다음에 teachers라는 단어가 와서 ‘교사들은 ~을 이해하지 못한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in the absence of(~이 없는 상태에서)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우리가 단지 ‘결석’이라고만 외웠던 absence가 이렇게 멋지게 쓰였답니다. 그리고 compare notes(의견이나 정보를 교환하다)라는 표현도 나왔는데, 여기서 이 표현을 ‘노트를 비교하다’라고 단순하게 이해하시면 아니 아니 아니되옵니다~!!!
그리고 30번에서 ‘점’이라고 외웠던 spot이 ‘발견하다’라는 뜻으로, ‘정신, 영혼’이라고 외웠던 spirit이 ‘활기를 띠게 하다’라고 쓰인 것은 애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at length가 ‘마침내’의 뜻으로 나왔거든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길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length에 ‘작은 한 점’의 의미인 at이 붙으면 좁은 범위 안내서 쭉 길게 늘어뜨려 생각해보는 느낌이라 ‘자세히, 충분히’란 의미를 갖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긴 토론을 ‘드디어, 간신히’ 마쳤다는 의미로까지 발전할 수 있답니다. 참고로 비슷한 뜻의 at last보다 뭔가 ‘우여곡절’의 느낌을 더 많이 가진 표현이라고 합니다.
끝으로 32번에 fine-grained temporal resolution(결이 고운 시간적 해상도)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나오는데, 우리가 ‘좋은’이라고 외웠던 fine에 ‘미세한’의 뜻이, ‘곡식’이라고 외웠던 grain에 ‘입자’라는 뜻이, 그리고 ‘결심’이라고 외웠던 resolution에 ‘해상도’라는 뜻이 있답니다.
제가 3년째 줄기차게 이 칼럼을 통해 말씀드리고 있지만, 단어는 반드시 문장 속에서 외울 때만 그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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