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
‘최순실 국정 개입 사건’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대통령 또는 윗선의 지시를 받아 범법행위에 가담하거나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전·현직 고위 관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순실 사건으로 흔들리는 관료사회 분위기를 전한 한국경제신문 기사(11월22일자 A1, 3면 참조)에도 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국정 농단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일부 전·현직 고위 관료에 대해선 ‘영혼 없는 부역자’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공무원들도 할 말은 있다. 정권의 핵심부를 아무 직함도 없는 비선이 좌지우지한 것을 미처 몰랐고, 그래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피해자라는 얘기다. 한 관료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돼 주권을 위임받은 권력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을 뿐”이라며 “은밀한 곳에 숨어 주인 행세를 한 이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털어놨다.
공무원들은 정권 초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벌어진 ‘대학살’이 관료사회를 움츠러들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직업관료를 대거 잘라내면서 김종 전 문체부 2차관 등 ‘비관료 점령군’을 내려보내 감히 누구도 찍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다. 1961년 미국 사회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놀랐다. 아이히만이 어떤 특별한 신념이나 정신병을 갖지 않은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유대인 학살과 같은 악행은 아이히만처럼 국가에 충성하고 히틀러의 명령에 순종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의식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무원이 왜 회사원과 다른지, ‘철밥통’이라 불리는 신분 보장과 공무원연금 등 여러 혜택을 왜 누려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한 네티즌은 댓글에 “공무원이 ‘내 국장, 내 장관, 내 입신’만 챙길 게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공직자들이 ‘영혼 없는 부역자’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다.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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