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산다는 건] 공복(公僕)이 사복(私僕)으로…"관료는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

입력 2016-11-20 18:47
수정 2016-11-21 05:20
<14> 관료는 영혼이 없다

관료는 승진·출세가 전부…인사권자의 뜻 못 거슬러
"국가위해 봉사하겠다" 신념 승진할수록 점차 옅어져
환경부 등 말바꾸기 다반사…前정부 정책 뒤집기 많아


[ 황정수/김재후/김주완 기자 ]
조원동 전(前) 청와대 경제수석은 엘리트 경제관료의 본보기였다. ‘KS 마크’로 통하는 경기고, 서울대 출신으로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에서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 ‘핵심 보직’을 거쳤다. 꼼꼼하면서도 합리적인 일 처리에 선배들의 신망과 후배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이런 조 전 수석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민간 기업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졌다. 검찰에 소환되면서 스스로 “참담하다. 경제수석을 지낸 사람이 이런 자리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고백할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엘리트 선배의 추락을 보고 있는 현직 관료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승진과 출세가 전부인 관료가 인사권자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며 자신들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 비유하는 자괴감이 공직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정권 눈치 보며 소신 뒤집어

수습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할 때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신념은 과장,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점차 옅어진다.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 1급으로 승진하면 그야말로 영혼은 온데간데없다. 정권에 고용된 기술자로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야 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2013년 7월 박근혜 정부는 전임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지역발전정책의 기본 개념인 ‘5+2 광역경제권(전국을 총 7개 광역경제권으로 나눠 지역 특성에 맞게 개발하는 것)’을 깎아내리며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료에게 이유를 묻자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구시대적인 개발 전략이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료는 이명박 정부 때 지역발전정책 업무를 담당했다.

환경부의 말 바꾸기도 산업부에 뒤지지 않았다. 2013년 8월 환경부 관계자는 공식 브리핑에서 “4대강 사업으로 보가 많아져 부분적으로 녹조가 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 1년 전 공식 자료를 통해 “낙동강 보는 댐과 달리 물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수량을 확보하면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조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 것과는 딴판이다. 당시 환경부 안팎에선 대통령이 바뀐 뒤 4대강 사업에 대한 환경부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의 인사 독점 탓

관료들도 할 말은 있다. 모든 인사권을 청와대가 주무르는 까닭에 승진에 목을 매는 관료들로선 눈치 보기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일선 부처의 국장급 인사까지 청와대 결재를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부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장관에게 인사권을 주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청와대가 인사를 독점하니 장관은 물론 고위 공무원들의 안테나가 하나같이 청와대로만 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현 정부의 고위 공무원단 승진 인사에서 부처가 추천한 1순위 후보자가 탈락하고 후순위자가 승진한 사례가 32건에 달한다.

“관료 스스로 자초한 일” 지적도

관료들이 스스로 현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공복(公僕)’이 아니라 ‘사복(私僕)’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공직자들의 이야기다. 현 정부에서 출세가도를 달린 모 관료가 한때 정권 실세였던 인사의 눈에 들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사역을 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부로부터 부당한 지시가 내려올 때를 대비해 사표를 윗옷 주머니에 넣고 일했다”는 몇몇 선배 관료들의 얘기는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정권이 레임덕(임기 말 권력공백 현상)에 빠지자 공직사회에선 차기 권력에 줄을 대기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벌써 특정 부처에선 ‘고위 관료 B씨가 야당과 가깝다’ ‘1급 C씨가 차기 정권에서 승진이 유력하다’는 설이 돌고 있다. 한 전직 관료는 “5년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시기가 앞당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정수/김재후/김주완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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