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대통령의 위기를 나라의 기회로

입력 2016-11-20 17:48
정치권, 난국 수습 절충점 찾고
단임제 폐단 없앨 개헌안 논의
대선·지방선거 함께 실시해야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지난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3시간 가까이 신칸센을 타고 회담했다. 인도가 건설하려는 고속철 1구간 505㎞를 수주한 데 이어, 나머지 구간에서도 신칸센 세일즈 외교에 나선 것이다. 하루 전 양국은 원자력협정을 체결해 일본 원전을 인도에 수출하는 길도 텄다.

열흘 전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고 함께 팝송을 불러 화제가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다음달 야마구치현에서 온천욕을 하며 양국 현안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처럼 각국의 정상외교는 숨가쁜 총력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페루에서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황교안 총리는 개최국 페루 대통령 외에 어떤 정상과도 따로 만나지 못한 채 초라한 귀국길에 올랐다. 두바이가 사업비 5조원을 투자하겠다며 인천시와 18개월 동안 추진하던 ‘검단스마트시티’ 사업이 며칠 전 끝내 무산됐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렸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된 초유의 상황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에 국민의 마음이 떠나버린 대통령과 어떤 외국 정상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자 할까. 이런 국면이 오래 가선 안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정치권은 수습을 도모하기는커녕 대치 상황으로 치닫는 것 같다. 우선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여전히 마음을 비우거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물론 언론이 쏟아내는 온갖 의혹 가운데 몰랐거나 과장된 것도 있고, 그래서 억울한 점도 있을 터다. 또 자고 나면 말을 바꾸고 조건을 덧붙이는 야당들 태도가 얄밉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초래한 주된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특히 1차 사과는 거짓 해명으로 드러났고, 2차 사과 때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은 뒤늦은 변호사 선임 등으로 빛이 바랬다. 지금이라도 엄중한 민심을 거스르는 언동은 자제하고 순리를 따르기 바란다.

야당도 무책임하다. 반사이익과 역풍을 저울질하면서 난국을 즐기는 모습이다. 실체도 모호한 ‘2선 후퇴’니 책임총리를 내세우더니 최근엔 ‘조건 없는 퇴진’으로 비약했다. 자신들이 제의한 총리 추천을 팽개치고 영수회담을 뒤집는가 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협박마저 등장했다. 혼외자 의혹을 감추려다 물러난 인물을 특별검사 후보로 거론한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닫힌다.

시간을 마냥 끌 수는 없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기득권, 반사이익과 당리당략을 모두 내려놓고 헌법 절차에 따라 질서 있게 난국을 수습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수사 진전에 따라 대통령의 중대한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국회는 바로 탄핵소추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의 위기를 나라 발전의 기회로 바꿔야 한다. 오늘의 혼란은 새 시대를 여는 진통이자, 1987년 헌정체제를 마무리하는 시련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기도 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을 바로잡는 권력구조 개편을 의제에 올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안에 합의할 수도 있겠다.

잦은 선거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도록 2022년부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함께 치르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 다음 대통령이 앞당겨 취임하고 차차기 대통령부터 임기를 4년으로 줄이면 된다. 여야 모두 고무줄 공천이 재현되지 않도록 대통령의 공천 관여를 제한하는 등 투명한 공천시스템 확립에도 힘써야 한다.

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을 줄이는 일도 절실하다. 대통령의 기업인 독대, 매머드 경제사절단의 해외 순방 동행, 기부나 출연 권유 등 낡은 행태가 사라져야만 선진경제로 진입할 수 있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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