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케티를 왕이 된 후 다시 만난 황태자의 약속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거야"
연극, 오페레타, 영화로 번지다
<황태자의 첫사랑>은 1898년 <카를 하인리히>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이 인기를 끌자 저자는 <알트-하이델베르크>라는 희곡으로 개작하여 무대에 올렸다. 연극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는 극작가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다. 그는 이후 몇 권의 소설과 희곡을 더 발표했지만 1902년 젊은 아내가 병사하자 괴로운 마음에 집안으로 숨어버린다. 연극 <알트-하이델베르크>가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2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그에게는 시력을 잃는 불운까지 겹친다.
이 연극은 일본까지 건너갔고 당시 대학 독문학도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조선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조선 왕세자가 일본으로 유학 가서 활약을 하는 각색 연극까지 생겼다는 기록도 있다. 또 박승희와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극극단 ‘토월회’가 <알트-하이델베르크>를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도 있다.
1924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오페레타로 제작되었고 MGM은 1927년에 무성영화로 만들었다가 1954년에 컬러 영화로 리메이크했다. 영화 제목은 였고 우리나라에서 상영할 때 <황태자의 첫사랑>로 바뀌었다. 마이어푀르스터는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1934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황태자의 첫사랑>은 여전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짧게 맛 본 다른 세상
카를 하인리히, 자녀가 없는 백부의 뒤를 이을 카를부르크의 황태자이다. 공립 김나지움 졸업시험에 최종 합격한 황태자는 1년간 하이델베르크대에서 공부한 뒤 포츠담 기병대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공 전하는 위트너 박사를 수행원으로 발탁하며 대학에 가서도 궁정에서와 다름없이 황태자를 엄격하게 보살피라고 당부한다.
열 살 때 딱 한 번 장거리 여행을 해봤을 뿐인 황태자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중간 기착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내려 줄서서 소시지를 사먹는 일도 신기하기만 하다. 하이델베르크역에서 숙소까지 걷는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일이 황태자에게는 첫 경험이었다.
수행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숙소에 도착했을 때 라일락꽃을 전해주며 환영시를 낭독해준 케티, 그녀가 바로 황태자의 첫사랑이다. 집주인 되르펠의 조카인 발랄하고 귀여운 케티와 난생 처음 키스를 한 황태자, 새로운 환경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케티가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뤼더음식점은 대학의 유명 클럽 회원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다. 꼽쩜美?영입한 삭소니아 클럽의 패기가 하늘을 찌른다. 학생들은 황태자를 ‘자네’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황태자는 학우들과 어울려 노느라 수업도 빠지고 결투를 벌이다가 얼굴에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숨 막히는 궁정생활과 달리 하이델베르크의 나날은 호쾌하고 즐겁다.
석 달 사이에 정열적이고 용맹스러운 청년으로 변모한 황태자에게 대공이 위중하다는 전갈이 날아오고, 황태자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공 자리를 물려받는다. 백부가 “쓸쓸하기 짝이 없는 정상에 서 있는 것, 그것이 권력의 위대한 비밀이란다”라고 했던 말을 곱씹으며 격식에 스스로를 가둔 차가운 남성으로 살아간다.
엄격한 궁으로 돌아가는 남자
2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는 곧 작센의 젊은 공주와 결혼할 예정이다. 하이델베르크의 나날이 ‘실감나지 않는 동화처럼 서서히 빛을 잃어갈 때’쯤 “군주가 되면 술 저장고 감독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던 켈러만이 찾아온다. 옛 추억을 떠올린 카를 하인리히 대공은 하이델베르크를 전격 방문할 결심을 한다.
그를 어려워하던 삭소니아 회원들은 차츰 옛정을 되살려 즐거운 시간을 만든다. 이제 돌아갈 시간, 스무 살이 된 케티와 뜨겁게 포옹한 황태자는 “우리 서로를 마음속에 간직해 두자.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대공이 된 황태자는 청춘의 싱싱한 추억을 안고 엄격한 궁정으로 돌아간다.
어른이 되면 답답한 일상을 착실하게 살아내야 한다.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해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백마 탄 왕자, 내 눈 속의 케티’라는 추억은 그래서 필요하다. 젊은 시절을 치열하고 아름답게 보내기, 그래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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