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 업황 전망
이창목 <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chang.lee@nhqv.com >
고령화와 빈부격차가 심각해졌고 저성장이 자연스럽다. 금리는 낮게 유지되고 있고 주식시장의 성과도 예전만 못하다. 금융시장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상품도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금융상품이 없으면 고객들을 붙들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자산운용사들의 성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변화가 심한 국내 금융시장 환경과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국내 진출이라는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바야흐로 운용사 적자생존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온 토종 자산운용사다. 이 회사는 1974년 국내 최초로 투자신탁을 전업으로 하기 위해 설립된 이래 한국 자본시장의 대들보로 성장해왔다.
한국운용은 그동안 국내 운용 인력을 배출하는 사관학교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많은 운용사와 연기금 등에서 한국운용 출신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대 강점은 주축 운용 매니저들의 근속연수다. 경쟁사에 舟?오랜 기간 근무한 인력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용한 결과다. 기본적으로 오너십이 강한 회사로서 장기적인 운용지침이 오랜 기간 내재돼온 영향이 크다. 인력 이동이 적은 만큼, 펀드의 성과도 안정적이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이 한국운용을 신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운용의 대표적인 상품은 ‘한국투자네비게이터’ 펀드다. 이 상품은 독창적인 전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홈런성 투자’보다는 ‘꾸준한 안타성 투자’로 승부를 보겠다는 회사의 방침을 잘 반영하고 있다. 매크로 관점의 톱다운 방식을 기본으로 경기 사이클에 따라 스타일을 바꾸는 전략을 취한다.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는 시기에도 수익률 방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단기성과 위주의 성장형 스타일 펀드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운용업계에서 한국운용은 눈에 띄게 다양한 스타일의 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네비게이터 외에도 ‘마이스터’ ‘한국의힘’ ‘롱텀밸류’ 등 고유한 스타일의 펀드가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국내 주식시장은 가치형·성장형·대형주·중소형주 등 주도주 교체주기가 비교적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포트폴리오인 셈이다. 다양한 펀드를 운용하는 것은 운용사 내부의 분산투자를 가능하게 해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한국운용은 베트남 중국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시장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해외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가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는 지역은 11년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베트남. 한국운용의 베트남 관련 펀드는 올 들어 10%대 수익률을 올리며 해외주식혼합형펀드 수익률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 투자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도 계획 중이다.
향후 한국운용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스타일 펀드에 걸맞은 벤치마크 사용 △해외 펀드 및 ETF의 다변화 및 활성화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펀드시장은 펀드별 스타일이 강화되는 추세다. 연기금 등이 먼저 투자 스타일을 정하면 운용사는 연기금이 정한 스타일에 맞춰 주식을 사고판다. 스타일 펀드가 제대로 굴러가는지를 가늠하려면 벤치마크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시장 수익률(코스피지수)이 아니라 스타일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펀드의 성적을 매겨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에는 금리가 급격히 낮아지며 코스피지수 기준 벤치마크 수익률 자체가 크게 떨어졌다. 투자자들의 요구수익률과 괴리도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코스피지수를 이겼다고 좋은 펀드로 분류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과거에는 운용역들이 좋은 종목을 찾아내는 데에만 주력했다. 앞으로는 펀드 스타일의 일관성을 잘 유지하면서도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능력이 중요시될 전망이다.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지 평가하는 데도 스타일 벤치마크 대비 평가가 유리하다. 운용역들의 순수한 ‘알파(초과수익)’를 측정하는 시스템이 자리잡으면 펀드 수익률도 함께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금융시장에 대한 욕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시장이 저성장·저금리 영향을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지역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 상품을 갖추지 않으면 수익률을 끌어올리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최근 인플레이션 기대, 라니냐 현상 등으로 원자재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높지만 국내에 출시된 펀드나 ETF 종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창목 <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chang.lee@nhqv.com >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