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최순실 사태 최대의 피해자가 된 사연

입력 2016-11-17 13:23
수정 2016-11-17 13:54



(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기업 중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업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한진그룹일 듯 하다. 재산, 명예, 사람 모두 피해를 본 유일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등장하는 다른 기업은 대부분 반대급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라인에게 돈을 뜯긴 대가로 사면, 불구속, 국민연금의 지원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사실 여부는 현재 의지없는 검찰이 밝히고 있어 의혹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대한한공은 그러나 돈을 달라는 대로 주지 않았다는 이유는 많은 것을 빼앗긴 듯 보인다. 그 악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윤회와 조현아 사건의 관계

2014년 11월말 십상시 문건 파동이 터진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인 정윤회의 국정 개입 의혹을 기록한 문건이 공개됐다. 정윤회는 최순실의 전 남편이자, 오랜 기간 박근혜를 보좌했던 인물이다. 그전까지 설로만 떠돌던 사건이 터진 것이다.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문건 파동의 여파였다. 이 얘기는 최근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 문건의 내용대로 10여명이 나라를 완전히 말아 먹었다. 대통령은 그들의 꼭두각시였다. 여기에 당시 세월호 7시간까지 문제가 되며 정윤회의 존재는 더 부각됐다. 청와대는 지금처럼 회피하고, 말 돌리기로 일관했다. 여론은 계속 악화됐다.

궁지에 몰린 청와대. 그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다. 12월8일 아침 일부 신문을 통해 일명 땅콩회항 사건이 공개됐다. 대한항공의 장녀 조현아가 비행기에서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제대로 못한다고 사무장과 직원에게 폭행을 가하고, 비행기를 거꾸로 돌렸다는 게 사건의 요지다. 이 사건은 폭발력이 있었다. 재벌가 장녀, 비행기, 사무장, 폭행, 비행기, 회항, 마카다미아 등 소재가 그랬다. 또 단순하고, 예외적이고, 구체적이고, 신뢰할만하고, 감성을 건드린다는 면에서 더더욱 화력은 컸다.

정치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내집에 불이 나면 그 불을 끌 생각하지 말고, 남의 집에 불을 붙여라.” 검찰은 곧장 대한항공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선지 대한항공 오너 일가끼리 주고받은 휴대폰 메시지까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국민 정서를 건드렸다. 재벌집 딸이 저지른 기이한 행동에 대한 여론은 악화됐다. 대한항공의 원칙없는 오너 감싸기도 국민감정에 불을 질렀다.

며칠이 지나자 정윤회와 십상시 파동은 땅콩회항으로 모두 덮여 버렸다. 뉴스로 뉴스를 덮어버리는 청와대와 검찰의 전략이 빛을 발했다. 결국 조현아는 구속됐다. 당시 모 일간지 부장들의 70%는 구속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한 사건은 그 사건만으로 형량이 결정되지 않는다. 청와대와 검찰이 개입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건파동의 여파가 조현아의 구속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연은 이어지고

악연이 이어졌다. 최순실 일당은 박 대통령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아래 鵑贊?재단을 만들어 기업들에 깡패짓을 하기 시작했다. 돈을 내라고 강요했고, 삼성 같은 곳에는 재단이 아니라 최순실의 딸에게 직접 돈을 주라고 요구했다.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냈다. 약한 고리가 있었던 SK CJ 롯데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너가 감옥에 더 있거나, 감옥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 처한 기업들은 달라는 대로 돈을 줬다. 깎으려고 했던 기업도 있었지만 대부분 응했다.

그러나 한진은 많이 낼 형편이 아니었다. 다른 기업에 비해 훨씬 적은(?) 10억원만 냈다. 보복은 곧 들어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6년 5월초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유도 모르는 불명예 퇴진이었다. 6시간만에 후임도 결정됐다. 그때만 해도 최순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한진해운 등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그만뒀구나 했다.

나중에 제기된 의혹이지만 조 회장이 최순실의 심기를 건드린 사건이 또하나 있었다. 평창올림픽 개폐막식장 건설이었다. 공사는 대림산업이 맡기로 오래전 결정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백으로 둔 최순실 일당은 결정된 것을 뒤집으려 시도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최순실이 실 소유주로 있는 ’더블루 K’와 MOU를 체결한 외국계 특정회사에 맡기려는 시도를 했다. 의도대로 되지 않자 공사가 지연됐다는 게 강원 지역단체들의 전언이다.

조 회장은 불명예스럽게 올림픽조직위원장직에서 쫓겨났지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뜻밖의 한진해운 법정관리

지난 8월말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최악의 물류대란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준비없이 진행된 법정관리행이었다. 이례적인 일은 최악의 물류대란에 대한 정부책임론이 커지던 9월중순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9월 13일 국무회의에서 “해운이 마비되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안일한 생각이 이번에 국내 수출입기업들에 큰 손실을 줬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은 기업이 회생 절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식의 기업 운영방식은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관리, 물류대란의 책임이 한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상당수 언론이 이 발언을 크게 다뤘다. 그만큼 이례적이었고, 강도높은 비판이었다. 또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한진해운의 경우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이 매우 미흡했다”라고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최순실의 만행이 드러나자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셈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은 업계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세계 7위의 해운회사였고, 올해초 정부는 한진해운에 현대상선 인수를 제안할 정도로 비교적 상황이 좋았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둘중에 하나를 살린다면 한진해운이라는 게 업계 사람들 얘기였다. 그러나 어느순간부터 채권단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장승환 한진해운 육상직원 노조위원장은 “한진해운을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보고서가 나왔고, 해운동맹 가입에도 성공했으며, 용선료 협상도 마무리 단계에 있어 회생 가능성이 컸지만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고 언론에 말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는 게 한진해운 노조의 주장이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은 최순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괘씸죄라는 주장이었다. 조 회장이 최순실의 미르 재단에 낸 10억원은 기업순위가 낮은 기업보다 적었다. 또 K스포츠 재단엔 출연을 거부했다. 금융당국은 물론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금융논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최순실과 엮이면서 조현아 구속, 조양호 회장 평창올림픽 위원장 사퇴,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의 시련을 겪고 있다. (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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