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통과 된 의료신기술, 한국선 3년 째 '심사중'

입력 2016-11-16 17:36
수정 2016-11-17 17:26
산업리포트 - 이중규제에 발목 잡힌 의료기기 산업

루트로닉 안구 황반 치료기
'신의료기술평가' 통과 못해 3년 동안 국내 판매 제약
"유효·안정성 인정 받아도 기술평가 막혀 판매 못해"
업체들 이중규제 지적


[ 김근희 기자 ]
의료기기업체 루트로닉은 세계 최초로 안구 안쪽의 황반을 치료하는 레이저 기기인 ‘알젠’을 개발했으나 3년째 출시 날짜를 못 잡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판매 허가를 통과했지만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신기술을 적용한 알젠의 임상 논문 내용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세 차례나 심사에서 탈락했다.

반면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에서는 판매허가를 받았다. 이중규제가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美·유럽보다 높은 규제 장벽

알젠은 황반에 있는 손상된 망막색소상피층(RPE)을 레이저로 제거하는 황반변성 치료 레이저 기기다. 시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찌꺼기를 배출하는 망막색소상피층이 손상되면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을 일으킨다. 루트로닉은 2013년 식약?판매허가를 받은 뒤 네 차례나 신의료기술평가를 신청했지만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유효성(치료 효과) 측면의 연구 결과가 부족하다며 이를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 사이 미국과 유럽에선 판매허가를 받았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 2007년 도입됐다. 의사 변호사 등 20명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는 최대 280일 동안 임상 논문을 분석해 판매허가 여부를 정한다. 심사위원들이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통과 자체가 어려운 구조다.


글로벌 경쟁에 ‘발목’

식약처가 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 등을 평가해 판매허가를 했더라도 평가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연간 250건 안팎의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심사를 통과하는 것은 100건 정도로 절반도 안 된다. 국내에선 식약처와 평가위원회를 모두 통과해야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영국 등에선 판매 허가와 별도로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지원 여부를 가르는 잣대로 활용한다”며 “한국처럼 판매 허가를 이중 규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의료기술평가 때문에 제때 의료기기를 출시하지 못해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밀린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체외진단업체 A사도 신의료기술평가에 막혀 해외에선 팔고 있는 진단기기 4~5종을 국내에선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판매하고 있는 제품이라도 새로운 기술을 추가하면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중규제 없애야”

신의료기술평가가 의료기기 분야의 대표적인 이중규제라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뒤늦게 개선책을 내놓았다. 식약처 판매허가를 받고 난 뒤에 신의료기술평가를 받던 절차를 통합해 지난 7월부터 동시에 심사가 이뤄지도록 했다.

이달 들어서는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54건의 의료기술에 대해 병원이 원할 경우 치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안전성은 있지만 유효성 근거가 부족해 탈락한 의료기술 중 대체치료법이 없거나 환자에게 필요한 기술들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이중규제를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식약처에서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은 뒤 판매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희 기자 tkfcka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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