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협동조합의 '공존'
향남산단에 어린이집 개설, 숙련 근로자 이탈 방지 효과
'품앗이' 물품구매
협동조합상품 서로 구매, 지역경제·중기 경쟁력 제고
공동 기숙사 설립하는 곳도
[ 안재광 기자 ]
소설 《장미의 이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가 살았던 이탈리아 볼로냐는 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지역으로 꼽힌다. 세계 4대 와인 협동조합 중 하나인 ‘리유니트&치브’가 이곳에 있다. 주택건설 협동조합 ‘무리’와 소비자 협동조합 ‘코프’ 등도 있다. 볼로냐 주요 기업 50개 중 협동조합 형태가 15곳에 이른다. 이 지역 내 협동조합은 주민들의 소비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협동조합의 더 활발한 활동이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지역 내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 ‘협동조합 선순환 구조’가 갖춰진 것이다.
제약조합, 향남산단에 어린이집
협동조합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지역 사회와의 조화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발표한 ‘협동조합 7대 원칙’에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부분이 들어 있다. 조합은 조합원 의사에 따라 지역사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 특성상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지역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조합원들이 조합을 통해 주체적으로 지역경제를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꾀하는 협동조합 활동이 꽤 있다. 한국제약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이 조합은 1999년 경기 화성 향남제약산업단지 입구에 공동 어린이집을 열었다. 대기업에서도 사내 어린이집을 본격 도입하기 이전이었다. 숙련도 높은 근로자들의 이탈을 고민하던 중 내놓은 방안이었다.
기업 근로자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 문턱을 낮췄다. 한국제약협동조합은 어린이집 운영비용 수천만원을 매년 지원했다. 만 2세부터 6세까지 취약 전 아이들을 돌봐줘 근로자들이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했다. 이 지역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집으로 자리 잡았다.
조합 간 물품 거래로 ‘상생’
협동조합 간 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고척산업용품종합상가사업조합과 서울남북부수퍼조합은 지난 추석 때 조합원들을 위한 추석 선물세트를 거래했다. 거래에 따른 부가세 10%는 중소기업중앙회 서울지역본부에서 지원했다.
중기중앙회 서울지역본부는 지난 7월부터 서울지역 협동조합 간 거래, 혹은 서울지역 협동조합과 다른 지역 조합 간 물품 및 용역거래 시 10%를 지원하는 ‘조합 간 협업 촉진사업’을 시작했다. 화훼·귀금속·패션 등 46개 조합이 사업안내집에 관련 내용을 실었다. 현재 20개 조합이 참여, 약 7억원 규모의 거래를 성시시켰다.
박승찬 중기중앙회 서울지역본부장은 “지역 협동조합 활성화로 지역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면, 기업이 지역 내에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 성장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중심으로 산업과 지역경제, 일자리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박 본부장은 또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 구조도 개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中企·지자체 협력모델 더 만들어야”
협동조합 공동사업은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을 위한 기숙사 설립과 업종 특성을 반영한 연구개발(R&D), 상품 전시회 개최, 공동 구매 및 판매, 교육 등을 공동으로 한다.
정부도 협동조합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소기업협동조합 활성화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구체적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 내수시장 판매 촉진, 공동 R&D 활성화 등 여러 분야에서 협동조합 지원을 위해 중기중앙회와 협업 중이다.
다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합과 지방자치단체의 연계가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란 지적도 나온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지역을 업무구역으로 하는 지방조합이 전체 조합의 약 30%를 차지한다.
지역경제 기반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에 특화된 ‘신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자체가 지역 협동조합과 협력해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협동조합이 다양한 형태로 사업을 꽃피워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 ?瞞?한다는 얘기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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