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점주주 7곳 확정
한투증권·한화생명 등 5곳은 사외이사 추천해 경영 주도
내년 초 차기 행장 선임
은행권 무한경쟁 예고
우리은행, 보험·증권 등 공격영업
정부 '입김' 우려는 여전히 남아
[ 서욱진 / 이태명 기자 ] 2001년 이후 네 차례 지분 매각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한 우리은행 민영화가 드디어 성공했다. 정부는 13일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보유한 지분을 쪼개 파는 방식의 민영화를 통해 우리은행 경영을 주도할 7곳의 과점주주를 확정했다.
이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한화생명, 동양생명, IMM 프라이빗에쿼티(PE) 등 5곳은 사외이사 추천권을 확보해 우리은행 경영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사실상 집단경영 체제다. 은행권에서 처음 시도되는 이 같은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할지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린다.
민영(民營) 우리은행의 등장은 신한·국민·KEB하나은행과의 경쟁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과점주주 주도로 은행·보험·자산운용 등에서 공격적 영업에 나설 수 있고, 동시에 배당을 늘리기 위한 수익 극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15년 만에 성공한 민영화
우리은행 경영은 2001년 예보가 옛 우리금융지주 주식 100%를 취득한 이후 줄곧 정부가 주도했다. 정부가 예보를 통해 경영전략, 인사 등을 총괄하는 사실상 국책은행이었다. 오랜 관치로 우리은행 경쟁력이 약화되자 정부는 2010년 이후 네 차례 민영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지분 30%를 통째로 인수할 후보가 마땅치 않아서다.
이후 새로 나온 게 지분을 쪼개 파는 과점주주 방식 매각이다. 지난 8월 시작된 과점주주 방식의 매각을 통해 이날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곳은 7곳이다. IMM PE,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한화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등이다. 중국 안방보험이 모회사인 동양생명을 제외하면 모두 국내 자본이다. 7개 투자자가 인수하기로 한 우리은행 지분은 29.7%다.
투자자별로 IMM PE가 지분 6%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3.7%(기존 보유지분 0.3%)를 인수한다. 한국투자증권 등 다섯 곳은 4%씩 인수한다.
◆과점주주 주도 ‘이사회 경영’
관심은 ‘민영 우리은행’의 경영 체제다. 정부는 4% 이상 지분 투자자에게 1명의 사외이사 추천권을 주고, 6% 이상 지분을 사는 곳에는 사외이사 임기를 3년까지 보장하기로 했다. 7곳의 과점주주 중 사외이사 추천 의사를 밝힌 곳은 IMM PE,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키움증권, 동양생명 등 5곳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은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다음달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를 선임할 예정이다. 차기 이사회는 기존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6명, 비상무이사(예보 추천) 1명 등 9명에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5명을 포함해 14명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다만 지금 사외이사 중 일부가 중도 퇴임하면 이사진이 줄어든다. 금융위원회는 향후 우리은행 이사회를 과점주주 추천 사외이사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도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중심으로 꾸리기로 했다. 차기 행장은 이르면 내년 1월께 선임될 전망이다.
◆‘주인 없는 민영화’ 제대로 작동할까
민영 우리은행의 미래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민간 주주가 주도할 새 우리은행이 은행산업 경쟁을 촉진할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과점주주 간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과 증권 등 과점주주 간에 은행 영업전략을 두고 의견이 대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일부 과점주주는 장기적인 은행 경영보다 배당 확대 요구 등 단기적인 투자금 회수에 주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내년 상반기 이후 과점주주 구성이 바뀔 수도 있다.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은 미래에셋 및 유진자산운용이 내년 상반기에 보유 지분을 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추천권을 행사하면 인수대금 납입 후 1년간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지만, 행사하지 않으면 6개월 뒤부터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
정부 입김이 완전 배제될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금융위는 “지분 매각 이후 1대주주로 남게 될 예보가 경영에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과점주주들이 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투자증권이나 키움증권, 한화생명 등 금융회사와 자산운용사 모두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관리와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서욱진/이태명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