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유모차·'혼참'·노인…'100만 촛불'이 낳은 신시위문화

입력 2016-11-13 18:42
(1) 목소리 높인 중고생
정유라 입시비리 의혹에 격분…수능 앞두고 '정의사회' 외쳐

(2) 유모차 부대
"부끄러운 부모 안될 것…시민들이 세상 바꾸자"

(3) 혼자서도 간다
SNS로 시간·장소 공유…집회장서 만나 함께 움직여

(4) 속죄한다는 60~70대
"아무 생각없이 박 대통령 뽑아 자식 세대에 죄 지은 느낌"


[ 황정환 기자 ] 지난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세 번째 주말 촛불집회를 찾은 100만명(주최 측 추산)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었다. 집회 주최 측인 1500여개 시민단체 연합이 전국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동원한 인원은 20만명 수준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80만여명은 ‘최순실 국정 농단’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이었다. 정유라 부정입학 의혹에 가슴을 친 중고생, 유모차를 끌고 자녀와 함께 나온 가족, 홀로 시위장을 찾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족, 박근혜 정부에 배신당해 처음 시위장을 찾았다는 60대 등 각계각층이 몰려들었다.

◆수능 앞둔 교복부대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은 집회장에서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최씨 딸 정유라 씨와 관련된 각종 입시비리 의혹에 분노했다. 정씨는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청담고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정씨는 SNS에 “부모 잘 만난 孤?능력”이라는 글을 올려 중고생을 더 화나게 했다.

오는 17일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들도 거리로 뛰쳐나왔다. 박종택 군(18·서울 신목고3)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잠 줄이며 공부하는 수십만 청년들의 꿈을 대통령이 짓밟은 것에 분노와 허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화 시위의 상징’ 유모차 부대

가족 단위로 참가한 ‘유모차 부대’는 평화 시위의 상징이었다. 유모차를 끌거나 자녀들 손을 잡고 시위 현장을 누볐다. 아내와 유모차를 끌고 온 김상환 씨(46)는 “두 아들에게 우리 사회에 정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주연 씨(29·여)는 언니 부부와 세 살짜리 조카와 함께 왔다. 그는 “나중에 생길 내 아이들이 엄마는 그 자리에 있었느냐고 물어볼 때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시위장에서 접선하는 ‘혼참러’

홀로 시위장을 찾아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친 ‘혼참러(혼자 참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김모씨(34)는 “시위에 참가하는 건 처음이라 아직 어색하지만 ‘무당’ 같은 사람에게 국정이 농단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혼자서라도 나왔다”고 말했다.

혼참러 상당수는 SNS에 익숙한 20~30대 직장인이었다. 이들은 SNS를 통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 뒤 홀로 참가해 집회장에서 같이 움직인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깃발을 준비하고, 붉은 뿔을 착용하기도 한다. 세종시에서 홀로 상경한 직장인 전모씨(28)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는데 무능은 용서할 수 있어도 정의를 저버리는 건 용서할 수 없다”며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기 위해 혼자라도 참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60대 시위장서 “잘못 뽑았다”며 속죄

박 대통령의 ‘콘트리트 지지층’이라 불린 노인도 많았다. 새누리당의 골수 지지자라는 이모씨(64·서울 한남동)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민의 피땀으로 세운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박근혜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나왔다”며 “이번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나설 문제”라고 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60대 여성 곽모씨는 딸 이민주 씨(25)와 함께 시위장을 찾았다. 곽씨는 “지난 대선 때 아무 생각 없이 야당이 싫어 박 대통령을 뽑았다”며 “자식 세대에게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평생 처음으로 시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