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집회, 평화롭게 끝났다 … 대한민국 시민은 위대했다

입력 2016-11-13 09:18
수정 2016-11-13 10:53

"간밤 서울 시내에 뭔일 있었나?" 13일 오전 9시, 창덕궁 앞에는 궁궐 입장을 기다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내린 비로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앞의 거리는 낙엽으로 곱게 물들어 늦가을 정취를 뽐내고 있다.

광화문, 서울광장 등 서울 시내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놀랐다. 전날 밤 TV 등을 통해 보던 놀랐던 촛불집회의 혼란한 광장의 모습은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100만 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던 서울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날 아침부터 시내 중심가 도로는 뻥 뚫렸다. 버스와 승용차들이 교통체증 없이 씽씽 달렸다. 도로는 물론 인도에는 담배꽁초, 쓰레기 조각하나 보이지 않아 평소보다도 깨끗했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돋보인 하루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 주말 촛불집회가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고,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여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는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드러냈다.

12일 밤 9시께 둘러본 집회 현장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가족단위로 참가한 시민들도 많았다. 40,50대 샐러리맨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역대 최대 인원이 모였으나 집회는 축제처럼 평??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일부 참가자가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로터리에서 청와대 방면 진출을 시도하며 새벽에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진보진영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는 이날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를 개최했다. 오후 7시30분 기준으로 주최 측은 100만 명, 경찰은 26만 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세종대로, 종로, 을지로, 소공로 등 도심 주요 도로는 물론 인근 지하철역까지 한때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집회는 2000년대 들어 최대 규모다. 2008년 6월10일 광우병 촛불집회(주최 측 추산 70만명, 경찰 추산 8만명),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규탄 촛불시위(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13만명) 참가 인원을 넘어섰다.

시민들이 많이 몰렸을 때는 남북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숭례문까지, 동서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종각까지 인파가 넘쳐났다.

문화제는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가수 이승환·정태춘·조PD 등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발언,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이승환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들지 못해 창피하다. 요즘 정신적 폭행을 당한 느낌" 이라며 자신의 대표곡 '덩크슛' 중 일부 노랫말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시민들과 함께 열창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 서울 성심여고 재학생들도 무대에 올라 "'진실, 정의, 사랑'이라는 교훈을 선배님의 어느 행동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며 "우리는 당신을 대한민국 대표로 삼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며 하야를 촉구했다.

앞서 참가자들은 종로, 을지로, 의주로 등 서울 도심 곳곳을 거쳐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로터리까지 5개 경로로 행진했다. 경찰은 최소한의 교통 소통 확보를 이유로 내자동로터리를 낀 율곡로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지점까지만 행진을 허용했다. 그러나 주최 측이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내자동로터리까지는 행진이 가능해졌다.

이날 촛불집회는 100여만 명의 인원이 모였으나 평화롭게 진행됐다. 도심에 모인 대다수는 별다른 돌발행동 없이 집회에 참가했고, 법원이 허가한 경로를 지켜 행진했다.

광화문 광장 주변에서는 일부 참가자들이 텐트농성을 하거나 소규모 단위로 모여 토론을 계속하며 밤을 새웠다. 13일 오전 9시 현재 광화문광장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평화롭게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를 마쳤다. 이젠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이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답할 때이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open@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