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처벌 강화 없던 일로' 혼란만 키운 보건복지부

입력 2016-11-12 07:03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불법 낙태 의사의 업무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늘리겠다던 보건복지부가 현재의 처벌규정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낙태 의사 처벌을 강화해선 안된다는 산부인과 의사들과 여성단체 등의 반대 목소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지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계 및 국민 의견을 수렴해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자격정지 기간을 조정했다”며 “형법 상 불법인 낙태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은 현재와 같이 1개월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9월 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8가지 비도덕적 진료행위 유형을 발표했습니다. 진료행위 중 성범죄, 대리수술, 진료외 목적의 마약투여 등과 함께 불법 낙태수술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포함했습니다. 이들의 처벌기준을 최대 12개월로 높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행법상 임신부에게 유전 질환이 있거나 강간, 근친상간으로 임신이 됐다면 낙태가 허용됩니다. 이 같은 사유가 없으면 불법입니다. 하지만 진료현장에서는 불법낙태가 상당히 많이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에서 피임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성관계를 해 아이가 생긴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정안에 따라 불법 낙태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이 1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를 두고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 논란이 커졌습니다. 의사들은 낙태수술 의사를 성범죄 의사와 같이 범죄자로 취급해선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불가피하게 낙태가 필요한 여성도 있는데 불법 낙태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이 늘어나면 어떤 의사도 낙태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여성들의 반발도 커졌습니다. 여성단체 등은 한국처럼 피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낙태수술을 막으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개정안에 반대하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고 광화문에서 행진도 했습니다. 여성단체 등은 한발 더 나아가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낙태를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로 유지하기로 개정안을 바꿨습니다. 50여일 동안 낙태 찬반 논란 등으로 큰 혼란이 있은 뒤입니다. 복지부의 안일한 태도가 사회적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낙태 허용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현재의 규제기준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복지부가 형법 상 불법인 낙태를 불법으로 판단했다면 자격정지 기간을 12개월로 늘리는 것이 타당합니다. 합법으로 판단했다면 형법을 고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형법상 불법인 낙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1개월로 유지한다는 것은 현재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낙태시술을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낙태를 허용하거나 반대했을 때의 비판을 신경쓰융?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는 복지부의 태도를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끝) /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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