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이 낳은 '최순실 괴담'

입력 2016-11-10 18:43
현장에서

유창재 증권부 기자 yoocool@hankyung.com


[ 유창재 기자 ] 서울 여의도 증권가가 ‘최순실 괴담’으로 정치권만큼이나 시끄럽다. 증권업계 몇몇 사건이 최순실 괴담으로 재가공돼 증권가를 떠돌고 있어서다.

KB금융지주가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증권 지분 22.56%를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1조2500억원에 사들인 것이 한진해운 대신 현대상선을 살리려는 최순실의 계획에 따른 것이란 얘기가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이 주식운용 전략을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위주로 바꾼 것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에 혜택을 주기 위해서란 말도 공공연히 나돈다.

업계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얼토당토않은 소문이라고 일축한다. 현대증권 인수전에는 KB금융지주뿐 아니라 한국투자증권도 참여해 1조원 넘는 가격을 써냈다. 한국투자증권 고위관계자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한국투자증권도 KB금융지주와 공모해 인수전이 가열된 것처럼 보이도록 조작하고 빠졌다는 뜻”이라며 “뱅커 회계사 변호사 등 거래에 참여하는 관계자만 수십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국민연금 관련 괴是?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경우다. 국민연금 주식운용실이 지난 6월 위탁운용사들에 ‘펀드 유형별로 벤치마크와의 복제율을 올릴 것’을 요구한 게 사건의 발단이다. 주가가 떨어진 중소형주를 손실을 감수하고 팔게 된 일부 운용사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불만은 곧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과거 몸담았던 특정 운용사를 죽이기 위해 중소형주를 팔고 있다”는 소문으로 탈바꿈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강 본부장이 고등학교 선배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지시’로 대기업을 밀어주기 위해 중소형주를 버렸다”는 소문으로 진화했다. 증권업계 고위관계자는 “지나친 비약”이라며 “국민연금 주식운용실에만 25명의 운용역이 근무하고 있고 리스크관리센터 감사실 등 견제 장치도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마음만 먹으면 주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시장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국민연금의 대형주 순매수 규모는 약 1000억원인 데 비해 외국인 순매수는 7조4000억원에 달했다”며 “1200조원 규모의 시장을 1000억원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괴담 유포자보다 더 나쁜 건 괴담이 그럴듯해 보이게 만드는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 관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 돈 500조원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정부가 2년마다 새로 뽑는 구조에선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괴담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의도 괴담을 차단하는 근본 처방은 인사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창재 증권부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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