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시위 때보다 10배 커진 '촛불 민심'…시위꾼보다 일반 시민 많았다

입력 2016-11-06 18:37
'국정농단 사태'에 들끓는 민심

지난 주말 전국서 시위 물결
박 대통령 '두 번째 사과'에도 시민들 분노
광화문광장에 성난 함성 "사과 말고 사퇴를"
아이 손 잡고 온 부모들 "민주주의 보러 왔다"


[ 마지혜/박상용 기자 ]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성난 민심이 지난 5일 전국에서 들끓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열린 1차 촛불집회 때보다 10배가량 많은 20만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4만5000여명)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을 들었다. 광주와 대구, 울산, 경주, 제주 등지에서도 집회·시위가 잇따랐다. 참가자들은 “최씨 국정 농단의 몸통은 박 대통령”이라며 “사과 말고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파문은 20만여명의 시민을 광화문광장으로 불러 모았다. 역대 최대 규모 촛불집회로 꼽히는 2008년 6월10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주최 측 70만명, 경찰 추산 8만명) 이후 최대다. 박 대통령?집회 전날 두 번째 사과를 했지만 민심은 더욱 분노했다.

집회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백남기투쟁본부·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민주주의국민행동 등 1500여개 시민·사회·노동단체로 이뤄진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했다. 주제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이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 자유발언과 공연이 끝나자 6시께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5만명 정도이던 시위대 규모는 보신각과 탑골공원을 지나 을지로, 명동, 남대문을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동안 20만명 수준으로 불어났다. 시청광장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왕복 10차선 도로가 인파로 가득 찼다.

경찰은 220개 중대 1만7600여명을 배치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안전하게 귀가하라”는 경찰의 당부에 따라 밤 11시께 자진 해산했다. 광주 동구와 대구 중구에서는 각각 3000여명과 1200여명이, 울산과 제주에서도 700여명과 500여명이 집회를 열었다.

◆가족 단위·학생·연인 참가자 많아

이날 집회에서는 어린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 노년층, 연인 등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과거 대규모 집회가 노동·사회단체에서 집단적으로 참가하는 일이 많았던 점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직장인 고모씨(39·서울 안암동)와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3학년 큰딸과 1학년 작은 딸, 여섯 살 난 막내아들 등 자녀 세 명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고씨는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에서 마치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최씨 개인이 문제였募?식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며 “아이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함께 왔다”고 말했다.

서울 계성고 2학년 가서영 양(18)은 ‘아직 어린 내 동생, 누나가 밝은 미래를 위해서 행동할게’라는 문구를 적은 종이카드를 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과외 수업을 마치자마자 광화문으로 왔다는 그는 “학교 친구들도 쉬는 시간과 방과 후에 온통 나라 얘기만 한다”며 “열 살인 남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누나가 되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나온 직장인 이성찬 씨(27)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최씨에게 연설문을 보내 수정받은 것도 실망스러운데 청와대에 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은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고 발뺌하는 걸 보고 나라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며 “대통령이 민심의 목소리를 똑똑히 듣기 바란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오는 12일 100만명의 시민 참가를 목표로 ‘3차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당 지도부와 전·현직 의원, 당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거리 투쟁(전국당원보고대회)에 나선다.

마지혜/박상용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