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의 데스크 시각] 대통령이 걷는 비극의 공식

입력 2016-11-06 18:15
이재창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51.6%를 득표했다. 직선제 도입 이후 과반 득표는 처음이다. 힘 있는 정부를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악재의 연속이었다. 첫 총리 인준에만 55일이 걸렸다. 2년차엔 세월호 참사로 1년을 허송했다. 3년차인 지난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개혁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 급기야 올해 터진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으로 ‘식물정권’이 됐다. 지지율이 역대 정권 최저인 5%(4일 갤럽)까지 추락했다. 레임덕을 넘어 하야를 걱정할 처지에 몰렸다.

최순실 파문이 없었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애당초 ‘소수정권’으로 출발했다. 아니 이 땅의 모든 대통령은 소수정권이다. 박 대통령의 득표율을 투표 불참자를 포함한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38.9%다. 투표에 불참한 지지자를 포함해도 지지율은 40% 초반대다. 그나마 박 대통령은 높은 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득표율 48.7%는 전체 유권자의 30.5%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환산 득표율은 34.3%였다.

국정 발목잡는 불복 문화

대통령의 득표율을 전체 유권자로 굳이 환산해 본 이유가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선뜻 승복하지 않는 ‘불복의 문화’ 때문이다. 남북 분단 이후 지속돼 온 심각한 이념대립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보수와 진보 세력이 40% 대 35% 정도로 갈려 있는 상황에서 50% 득표는 쉽지 않다. 환산 득표율이 40%를 넘기기 어려운 구조다. 역대 대통령의 환산 득표율은 취임 초를 빼면 대체로 지지율 상한선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소수정권은 필연적이다.

선거전의 대결 구도는 선거 후에도 국민정서에 그대로 남기 일쑤였다. 경쟁후보를 지지했던 국민은 선뜻 대통령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보수는 진보 대통령을, 진보는 보수 대통령을 비토하는 기류가 강했다. 대선이 끝난 뒤 국민의 30~40% 정도가 반대편에 견고한 성을 쌓는다. 취임 후 반짝 지지율이 오래가지 않는 이유다. 애당초 정책 추진 동력을 얻기 힘든 구조다.

제왕적 권력에 비리 차단 어려워

여기에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 공약 경쟁이 한몫을 한다. 여야 할 것 없이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한다. 그렇지 않고선 대통령이 될 수 없어서다. 그런 포퓰리즘 공약이 나중에 대통령 발목을 잡는다. 한정된 재원으로 포퓰리즘 공약을 이행할 방법은 없다. 결국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가 이탈한다. 2년차가 되면 지지율이 급락하고 3년을 넘기면 레임덕을 걱정하는 처지에 몰린다. 4년차에 어김없이 사정정국을 조성하지만, 식물 대통령을 피하진 못한다. 역대 대통령이 걸어온 필연적 비극의 공식이다.

대통령의 불행은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떼어서 볼 수 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게임은 극단적인 대결정치를 불렀다. 권력 주변엔 똥파리가 모여들지만 이를 제어할 수단이 없다 보니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3년이 넘으면 레임덕은 피할 수 없었다. 웃으면서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이 없었던 이유다. 능력도 있고 국민 지지도 받았지만 끝은 다 불행했다. 국민의 불행이자 국가의 불행이다. 대통령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임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권력구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이재창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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