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조 PEF의 질주] 세계 최대 PEF 블랙스톤, 한국 진출…토종 PEF와 '진검승부'

입력 2016-11-03 19:17
(5)·끝 - 한국 몰려오는 글로벌 사모펀드

글로벌 PEF 잇단 투자 성공 KKR, 오비맥주로 4조 차익
칼라일, ADT캡스 투자회수 나서

한국 투자 조직도 강화
미국 TPG, 이상훈 씨 영입…베인캐피탈, 이정우 씨 기용


[ 유창재 기자 ]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미국 블랙스톤이 한국에서 기업 투자를 본격화한다. 그동안 부동산 외에는 한국 투자에 소극적이던 블랙스톤마저 가세하면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정도를 제외하면 소위 메이저 PEF들이 모두 한국 시장에 진입했다. 한국 사모 투자 시장이 글로벌 PEF들의 ‘경연장’이 된 셈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체력을 키운 토종 PEF와 글로벌 PEF 간 진검승부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블랙스톤, 왜 뛰어드나

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블랙스톤은 미국 뉴욕 본사에서 근무하던 국유진 상무를 최근 홍콩 지사로 재배치해 한국 투자 담당으로 발령냈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칼라일,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에서 경력을 쌓은 PEF 전문가다. 블랙스톤이 대(對)한국 전담인력을 아시아에 전진 배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블랙스톤은 한국 사무소 개설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잠재력 있는 국내 기업에 투자한 뒤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180억달러(약 20조5000억원) 규모의 7호 펀드를 조성했다.

블랙스톤은 그동안 한국 기업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여성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의 지분 일부를 약 3000억원에 인수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2009년 우리은행과 함께 조성한 우리블랙스톤PE를 통해 필라코리아의 아쿠쉬네트 인수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지만 한국 투자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은 2014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토종 PEF가 많고 경쟁이 치열해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뜨거워진 한국 사모투자 시장

블랙스톤이 한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기로 한 것은 경쟁 글로벌 PEF들이 한국 시장에서 조(兆) 단위 투자를 잇따라 성사시킨 데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KKR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 컨소시엄의 오비맥주 투자가 대표적이다. KKR 컨소시엄은 2009년 세계 최대 맥주회사 AB인베브로부터 오비맥주를 2조3000억원에 사들인 뒤 2014년 6조2000억원에 되팔아 4조원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칼라일도 2014년 ADT캡스를 2조원에 인수한 뒤 투자 회수를 추진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과거 외환위기 시절 칼라일(한미은행), 론스타(외환은행), 뉴브늑?제일은행) 등 글로벌 PEF들이 한국에서 은행들을 헐값에 인수해 비싼 값에 되팔면서 ‘먹튀 자본’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PEF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며 “차입매수(LBO)에 대한 판례가 정립되면서 법적인 불확실성도 줄었고, 인수금융 시장도 발달하는 등 글로벌 PEF가 활동하기 좋은 여건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KIC) 등 한국 펀드 투자자(LP·유한책임사원)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한국 시장을 간과할 수 없게 된 요인이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글로벌 PEF의 주요 LP로 부상하면서 상징적인 차원에서라도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베인캐피탈, TPG 등 줄줄이 한국행

최근 들어 한국 투자팀을 새로 꾸리거나 강화하는 해외 유수의 PEF는 블랙스톤뿐만이 아니다. 미국 베인캐피탈은 지난해 모건스탠리PE에서 이정우 전무를 영입해 한국 투자를 개시했다. 지난 5월 A.H.C 브랜드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 카버코리아 경영권을 골드만삭스 특수상황그룹(SSG)과 함께 인수했다. 작년 9월 한국 IB업계 1세대인 임석정 전 JP모간 대표를 회장으로 영입한 유럽계 PEF인 CVC캐피탈파트너스도 최근 로젠택배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미국 TPG는 지난 8월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장남이자 모건스탠리PE 대표를 지낸 이상훈 씨를 한국 총괄대표로 선임했다. TPG는 2000년 자회사인 뉴브릿지캐피탈을 앞세워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2005년 스탠다드차타드(SC)에 매각, 1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긴 PEF다. 2008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매각을 끝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가 2014년 돌아왔다. KKR도 지난 8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임형석 LG전자 부사장을 한국 투자 담당 전무로 영입해 한국 투자팀을 강화했다.

토종 PEF 운용사들이 이들 글로벌 PEF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한 토종 PEF 대표는 “글로벌 PEF는 본사 투자위원회 위원들이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 데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발빠른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PEF 관계자는 “실력 있는 중견 기업을 발굴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는 데 강점이 있는 만큼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수완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