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강연 - 다니엘 자이프만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장
연구과제 대신 인재에 집중
실패는 신기술 창출의 밑거름
연구 마음껏 하도록 지원해야
순위 매겨선 혁신 생기지 않아
다양한 인재 모아 놓는 게 중요
[ 고은이/이상엽 기자 ]
“‘과학’ 대신 ‘과학자’에 투자합니다. ‘연구 과제’ 대신 ‘인재’에 집중합니다. 지금까지 와이즈만연구소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온 비결입니다.”(다니엘 자이프만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장·사진)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로 꼽히는 와이즈만연구소의 채용 방식은 독특하다. 연구 주제를 미리 정한 뒤 그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는 게 아니다. 먼저 최고의 인재를 뽑고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자이프만 소장은 “통념을 깨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無)전략이 전략
자이프만 소장은 2일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6’에서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강연했다. 와이즈만연구소는 4000여명의 교수, 과학자,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된 국가연구소다.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두 명의 이스라엘 대통령을 배출했다. 자이프만 소장은 이 연구소를 10년째 이끌고 있다.
그는 “전략이 없는 게 연구소의 전략”이라고 했다. 자이프만 소장은 “전문가들도 미래를 이끌 기술이 뭔지 미리 알아내긴 쉽지 않다”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꾼 과학과 기술은 모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기초과학 연구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엑스레이가 대표적이다.
자이프만 소장이 예측하기 힘든 특정한 ‘기술’에 투자하는 대신 ‘사람’에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기심과 열정이 있는 과학자를 선발해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마음껏 연구하도록 한다는 것. 그들의 아이디어에 투자하면 모험 요소는 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를 거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와이즈만연구소의 채용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여러 차례 긴 면담을 거친다. 자이프만 소장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어떤 사고과정을 통해 해법을 제시하는지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자이프만 소장은 “이렇게 채용된 과학자들의 기초연구가 결국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영역에 국한된 투자를 하면 과학자들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있다”며 “점진적 변화는 만들어낼 수 있지만 파괴적 혁신은 일어나기 어려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영국에서 불었던 양초기술 연구 바람을 예로 들었다. 많은 영국 과학자가 새로운 양초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지만 결국 세상을 바꾼 것은 양초가 아니라 전기의 발명이었다는 얘기다.
◆인재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이어야
일단 인재를 고용했다면 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게 와이즈만연구소의 철학이다. 자이프만 소장은 “특히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미래 신기술을 창출하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디어를 실제 자원화하려면 위험을 감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비용 지출과 사고 위험 속에서 각 과학자의 재량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일률적인 잣대를 내세워 인재를 줄 세우는 평가 방식은 위험하다고 했다. 연구소가 원하는 것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다. 그는 “순위를 매겨선 혁신이 생기지 않는다”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을 모아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와이즈만연구소가 논문 수로 과학자들을 평가하지 않는 이유다.
2015년 기준 와이즈만연구소의 연구내용을 기초로 만들어진 제품의 총 매출은 300억달러(약 34조5000억원)에 달한다. 2005년 80억달러에서 10년 만에 네 배 가까이로 늘었다. 기술이전회사 ‘예다’를 통해 특허 관리와 상용화를 진행하고 있다. 특허로 수익이 나면 이 중 60%는 연구실에 재투자되고 40%는 과학자 개인에게 돌아간다.
고은이/이상엽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