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향력 커지는 PEF
홈플러스·한라비스테온공조 등 대형 매물 PEF가 '싹쓸이'
최근 4년간 인수금액 33% 차지
한진해운·현대상선 자금부족 때 PEF 비주력자산 인수로 '숨통'
연기금 위탁자산 6년새 3배로
PEF '실탄' 늘어 영향력 더 커질듯
[ 오상헌/이동훈/김태호 기자 ]
올초 진행된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부 인수전은 MBK파트너스와 ‘스탠다드차타드 프라이빗에쿼티(SC PE)-아폴로’ 연합군 간 2파전으로 치러졌다. 조(兆) 단위 매물을 놓고 국내외 사모펀드(PEF)끼리 한판 승부를 벌였다. 승자는 1조1300억원을 제시한 MBK였다.
비슷한 상황은 지난 9월 국내 4위 택배업체 로젠택배 인수전에서도 벌어졌다. CVC캐피탈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 칼라일 등의 3각 대결로 치러진 것이다. 결과는 3200억원을 써낸 CVC의 승리였다. 한때 유진그룹 계열사이던 로젠택배는 미래에셋PE(2010년)와 베어링PE(2013년)를 거쳐 또다시 PEF를 주인으로 맞이하게 됐다.
◆M&A시장 주인공 된 PEF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국내에서 매각된 709개 기업 중 117개(16.5%)를 PEF가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금액 기준으로는 101조6904억원 중 33조8651억원으로, 33.3%에 달했다. 홈플러스(MBK 인수가격 7조6800억원), 한온시스템(옛 한라비스테온공조·한앤컴퍼니 2조8180억원), ADT캡스(칼라일 2조665억원), 현대상선LNG사업부(IMM PE 1조1000억원) 등의 대형 매물을 PEF가 잇따라 인수했기 때문이다.
M&A시장에서 PEF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PEF가 인수한 기업 수는 32개로 이미 작년(30건) 수준을 넘어섰다. PEF의 기업인수 비중 역시 24.8%(129건 중 32건)로 2015년(189건 중 30건·15.9%)을 훌쩍 뛰어넘었다. 올해 인수합병(M&A) 시장만 놓고 보면 매물 4개 중 1개꼴로 PEF가 인수한 셈이다.
투자 대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외식 제조 유통 등 전통산업뿐 아니라 신성장 분야에 새로 뛰어든 새내기 업체에도 투자하고 있다. JKL파트너스는 호텔 모텔 등 숙박업체 예약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기 어때’에 240억원을 투입, 지분 17%를 손에 넣었다. 골드만삭스PIA는 음식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과 전월세 부동산정보 검색 앱 ‘직방’에 각각 400억원과 380억원을 투자했다. 웹툰업체 레진엔터테인먼트(IMM PE)와 웹소설업체 문피아(S2L파트너스)도 PEF를 경영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PEF는 웨딩(유니슨캐피탈의 아펠가모 인수), 상조(VIG파트너스의 좋은상조 인수) 분야에도 진출했다. 박재현 율촌 변호사는 “PEF들이 그동안 쌓아온 투자 노하우를 통해 과거 투자를 꺼리던 성장산업이나 해외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SOS 치는 PEF
PEF의 영향력은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대기업이 PEF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랬다.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2010년 금호렌터카(현 롯데렌터카)와 대우건설을 각각 MBK-KT 컨소시엄과 산업은행 산하 PEF에 팔았다. 지난해 금호고속을 되찾아올 때도 칸서스파트너스의 도움을 받았다.
PEF는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한몫했다. 한앤컴퍼니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벌크선 사업부를 잇따라 인수해 H라인해운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IMM PE는 현대상선 LNG선 사업부를 샀다.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PEF와 손을 잡은 대기업도 많다. CJ그룹은 지난 4월 터키 최대 영화사인 마르스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IMM PE 등의 도움을 받았다. 인수대금 7919억원의 절반이 넘는 4900억원을 IMM PE 등 PEF에서 조달받았다. 하림도 지난해 1조원에 달하는 팬오션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JKL파트너스와 손을 잡았다.
◆PEF 영향력 더 커진다
M&A시장에서 PEF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매년 수십조원씩 적립금이 불어나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PEF에 건네는 ‘실탄’ 규모를 늘리고 있어서다. 국내 PEF들이 국민연금 등 투자자에게 위탁받은 운용자산은 2009년 20조원에서 2016년 6월 60조원으로 6~7년 만에 세 배가 됐다.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새로 설정된 PEF 약정금액은 6조600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30%가량 늘었다. PEF는 이 돈으로 기업을 산 뒤 비싸게 팔아 ‘투자원금+차익’을 투 愍悶“?되돌려준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국내 대체투자(PEF 등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8.98%로 국내 주식(1.67%) 및 국내 채권(4.29%)보다 높았다. 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이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는 만큼 2020년 이전에 PEF 운용자산이 1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상헌 / 이동훈 / 김태호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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