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대통령 권한을 국회에 달라고?

입력 2016-11-02 17:27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대선에서 승리하니 속된 말로 사돈의 8촌까지 엮어 부나방처럼 몰려오더라. 그러나 ‘권불 5년’이 아니라 ‘권불 3년’이다. 임기 반환점을 도니 곳곳에서 둑이 무너지더라. 어깨 한 번 잘못 으쓱했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고위직을 지내며 실세 소리를 들었던 한 인사가 기자에게 한 얘기다. 전화가 오더라도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을 정도로 몸조심했던 이 인사는 ‘무탈하게’ 청와대를 나왔다.

역대 정부의 이른바 비선 실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고 한다. 온갖 유혹을 떨쳐내고 자기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못하면 정권 말 어김없이 쇠고랑을 차는 악습이 관행화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느 정부도 빠지지 않고 측근 실세들의 비리로 얼룩졌다.

與는 계파싸움, 野는 갈팡질팡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며 개헌에서 해법을 찾는다. 국회 상당수 개헌론자들은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에 주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과연 우리 정치권이 국정을 담당할 능력이 있나. ‘최순실 파문’ 대응 과정을 보면 정치권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와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 인사가 정국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탄핵·하야까지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 거국중립내각을 거론하던 와중에 단행한 박 대통령의 ‘깜짝 인사’에 여당 일각과 야당이 반발하는 것은 일견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정국 혼란 책임에서 비켜날 수 없다. 새누리당은 누구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입을 닫았고, 비박계는 연일 지도부 물러나라는 목소리만 냈다. 입으로는 ‘풍전등화’라고 하지만 수습보다는 당 주도권 쟁탈전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거국내각 한들 싸움 ‘불 보듯’

야당은 갈팡질팡했다. 야당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먼저 제안했다. 막상 새누리당이 거국내각 카드를 꺼내자 얘기가 달라졌다. 문 전 대표는 “짝퉁 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이라고 반대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며 거국내각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대안은 없었다.

야당이 오락가락한 것은 거국내각을 두고 득실에 대한 교통정리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다. 거국내각을 수용하면 향후 국정 운영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 내년 대선 때까지 여권의 실정을 공격하는 게 효과적인 전략인데, 거국내각을 하게 되면 그게 불가능해진다. 박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 내정은 야당의 이런 고민을 오히려 덜어준 측면이 있다.

거국내각이 들어선다고 해서 정국이 수습될까. 허수아비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 권력을 분점한 여야가 국정 현안을 놓고 싸움박질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1990년 3당 합당 때 비밀리에 내각제 개헌을 하기로 약속한 이후 개헌론은 숱하게 명멸했다. 매번 정파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게 정국 수습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라고 정치권은 주장한다. 정치권도 함께 권력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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