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학업 스트레스로 어머니를 살해한 한 고등학생의 충격적 이야기가 전국에 알려진 적이 있었다. 이 학생은 전국 모의고사 상위권에 드는 우등생이었지만, ‘전국 1등’을 강요하는 어머니에게 맞을까 두려워 성적표를 위조했다. 이 사실이 탄로 날 위기에 처하자 결국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어머니는 숨졌고, 아들은 존속살인범이 되었으며, 별거 중이었던 아버지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이렇게 한 가정이 무너졌다. 이 후에도 극단적 선택과 비극으로 끝맺어진 가족들의 이야기가 연이어 보도되었다. 이제는 한 두 사건이 아니라서 우리는 점차 이 충격적인 사건들에 익숙해져갈 정도이다. 마치 천천히 끓어오르는 물에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냄비 속 개구리’들처럼. 이 끝에는 결국 우리 사회의 해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외에 많은 사회적 비극의 시작에도 ‘가정’이 있었다. 부모?자식 간의 불화, 아동 학대, 아동?청소년 비행 등 줄어들 줄 모르는 사회적 문제들의 원인을 파헤쳐 보면 상당 부분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가정’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傷鄂?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는 누구인가. 과거 우리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저절로 부모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서 ‘장원급제’와 같은 성공을 이뤄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녀들은 ‘낙오자’가 되며, 부모 역시 ‘낙오자’를 만들었다는 죄인의 꼬리표를 떼지 못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부모’라는 위치에서 항상 완벽한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죄책감과 함께 사회적인 눈총을 감당해야만 한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이런 부담감 속에 자녀들을 키운다. 재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혹은 부모 됨이 두렵다는 이유로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는 부부들도 생긴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부모’에 대한 인식 역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실시한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700여명의 부모 중 94%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별도의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고 응답하였고, 필요한 부모교육의 내용으로는 ‘자녀와 공감하는 방법’이 72.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부모들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양육정보 전달이 아닌 자녀와 제대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큰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부모 됨’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보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역할이 아닌, 좀 더 나은 부모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전문 도서부터 시작해 강의까지 수소문하여 정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는 주입식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부모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부모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다’는 비전으로 부모로서의 ‘나’의 성장을 돕고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줘야 하는 역할을 강조하기보다, 부모로서의 ‘나’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자녀의 삶에 맞춰진 역할보다, 부모인 자신이 자녀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를 돌보고 키우는 사람이지만 자녀를 잘 키우는 것만이 목적이 되면 결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좋은 부모는 나의 자녀를 포함한 다음 세대에게 삶의 모델이 되어주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참된 교육인 것이다.
재단의 부모교육에 참여하는 대다수 부모님들은 온갖 성공한 부모 스토리들을 접하며, 그들을 따라가고자 애도 많이 써봤다고 고백한다. 성공한 부모, 좋은 부모는 오직 하나로 일치되는 이상향이 아니다. 각자의 이상향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향해 자라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뿐’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찾는 아이가 슬퍼 보이는 것처럼, 자식만 잘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부모의 모습 역시 슬프다. 아이가 행복을 꿈꾸며 자연스레 ‘어른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녀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함께 성장하는 ‘부모로서의 성숙기’를 그려봐야 되지 않을까.
여승수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 >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모바일한경 구독신청] [한 경 스 탁 론 1 6 4 4 - 0 9 4 0]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